향기하는 수필 - “고결한 척, 착한 척, 선량한 척 제발 좀 하세요!”
상태바
향기하는 수필 - “고결한 척, 착한 척, 선량한 척 제발 좀 하세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04.05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접 본 일이라도 다른 사람 흉을 보는 것이
추해 보인다는 아들의 지적에 충격을 받았다
김승범(객원기자, 열린사이버대학교수)
김승범(객원기자, 열린사이버대학교수)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진다.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 그게 영성의 스피릿이다. 스피릿은 우주의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안에 있던 우주의 스피릿은 남아 있다. 그래서 영성이 중요한 것이다. 몸뚱이도 내 것이고 마음도 내 것이지만 영혼만은 내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지성이라고 불리던 故 이어령 박사가 죽음을 앞두고 남겨진 우리에게 한 말이다. 우리의 영혼이 이 시대의 영성이고 그 영성은 그 사람이 떠나도 살아남아 움직인다. 
어느 날 우연히 MZ세대(1980년대초 ~2000년대초에 출생한 세대)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결한 척, 착한 척, 선량한 척- 제발 좀 하세요, 안하는 것보다 몇 만 배 낫습니다. 더럽고 악랄하고 불량한 채 날것으로 살 작정입니까?” 대놓고 추하고 상스럽고 악랄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경계심이라도 갖고 거리를 들 수 있다. 그런데 가면을 쓴 사람들에게는 그런 대비조차 못하고 맥없이 당한다. 이후엔 가해자인 상대방보다 어리석은 자신을 향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순박한 얼굴로 나타나 내 뒤통수를 쳤던 사람, 내 앞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내 장점을 칭송하더니 돌아서서는 험담을 했던 사람, 긍휼함이란 단어가 인간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던 인간, 지인들에게 인격자로 인정받았지만 가정폭력범이었던 사람, 유명인사부터 측근들까지 다양한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각 분야 사기꾼은 물론 위선자에게 기만당한 경험담만 글로 써도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인데,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이런 순진한 말을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언행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30여 년간 경찰생활을 하여  항상 어느 사건의 이면,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들추거나 살피며, 살았다. 수많은 범죄자, 사람들이 국민을 속인 바를 찾아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경찰의 의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찾고 미담에도 회의적인 편이었다. 너무도 당당히 다른 사람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죄책감도 못 느꼈다. 직접 본 일이라도 다른 사람 흉을 보는 것이 추해 보인다는 아들의 지적에 충격을 받았다.
훌륭한 아빠는 아니어도 추하고 부끄러운 아빠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그 후부터 주변사람에게 다른 사람 험담을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좋은 점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말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비판하고 지적하는 말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돈에 관심 없고 봉사활동이나 환경운동만 한다더니 집을 샀다고? 실속은 혼자 챙기는 스타일이네. 아니, 안목도 없으면서 요즘 유행한다고 그림을 산다니 허세가 심하다.”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말을 한다. “재테크에도 관심이 있었구나, 요즘 도시에 집을 마련하는 건 엄청 어렵다는데 잘됐다. 이른 나이에 취향을 발견해서 좋겠다. 한 점이라도 좋은 그림이 집에 있으면 분위기가 달라질 텐데, 대단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착한 척했더니 점점 착한 말을 하게 된다. 1964년 개봉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에서 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은 거리에서 꽃을 파는, 천박한 언행을 일삼는 아가씨다. 그런데 한 교수로부터 도움을 받아 귀부인 옷을 입고 발음과 어휘 등을 교정 받으면서 진짜 우아한 여성으로 변신했다.  
늦기는 했지만 남들에게 잘 보이거나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하게 늙어가지 않도록 착한 척, 관대한 척이라도 해야겠다. 매일매일 젊은이들에게 배운다. 그게 잘 늙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디에선가 본 위대한 역설이란 글을 사무실에 걸어놓고 매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사람들은 변덕스럽고 불합리하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라.
네가 선을 베풀면 숨은 의도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럼에도 선한 일을 하라.
네가 성공하면 거짓 친구와 진정한 적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하라.
네가 오늘 한 좋은 일은 내일 잊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좋은 일을 하라.
너의 정직과 솔직함 때문에 상처받을지 모르나 그럼에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가장 큰 생각을 품은 위대한 사람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 의해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위대한 꿈을 꾸어라.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워라,
네가 오래 쌓아올린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쌓아올려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