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 - 말이 한 송이 꽃향기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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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 - 말이 한 송이 꽃향기가 되려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2.10.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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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선 때를 가려 말씀하셔
그 말이 사실이고 옳더라도
이익 줄 수 있어야 말씀하셔
말에는 인향 뿜어져 나오기에
팔정도의 바른 말을 실천해야

지난 10월 9일은 제576돌 한글날입니다. 한글의 품격은 유네스코가 1997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더 높아졌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세계인들이 K팝과 드라마와 영화 등을 접하며 한글을 통해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하고, 또 K팝 공연 때 지구촌 젊은이들이 우리말로 ‘떼창’을 하는 모습을 보면 국경을 초월한 우리말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 창제에 오롯이 담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요즘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겨레말을 함부로 어지럽게 쓰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국정감사의 자리에서 피감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버르장머리’, ‘눈에 뵈는 게 없나’ 라는 고성과 막말이 오고갑니다. 여기에다 거친 말, 감수성 떨어지는 부적절한 망언, 위기모면용 거짓말까지 각양각색입니다. 
그 울림과 파동이 ‘침묵의 다수silent majority’에게 전달되면서 시청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토해낼 뿐만 아니라 아예 그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토착왜구土着倭寇’라는 말도 어느 정당의 아상我相에서 나왔습니다. 게다가 정치권에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로 그 껍데기를 둘러봤자 이에 속아 넘어갈 만큼 민심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아상의 벽이 높고 넓을수록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상대의 견해를 고치려 합니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은 아상의 바깥쪽에 있으므로 자기 눈이 자기의 눈썹을 볼 수 없듯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나는 게 정치라고 말합니다. 말은 정치인의 생각과 견해, 진심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유권자들과 소통하거나 반대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혀를 빼 들어 칼처럼 휘두르는 거친 말로써는 어림없습니다.
상대의 흠집과 맹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공방攻防이 아니라 양측 모두가 실리는 챙기는 ‘포지티브섬 positive-sum’ 게임은 대화의 필요조건입니다.  
세존께서는  「대화의 주제 경」  (A3:67)에서 대화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텅 비우고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비록 화자話者가 논리로 제압하고 비아냥대고 작은 말실수에 꼬투리를 잡더라도 주의 깊게 듣고 화자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라고 합니다. 
화자의 감정을 느끼면서 그 생각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아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난이나 좋고 싫음의 분별하는 마음이 비어 있고 너그러운 마음이 자리합니다.  
사실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화자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동적으로 재빠르게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공격하거나 방어 상태에 돌입합니다. 
이럴 때 마음챙김(正念, sati)해서 사과謝過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낸다면 현재의 대립과 갈등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가 ‘사과는 곧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바야 왕자 경」 (M58)에는 세존께서 때를 가려서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 말이 사실이고 옳더라도 남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남들에게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어야만 그때서야 그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경에는 어떤 사람이 부자이고, 명예가 높고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말투에 반감과 집착과 자만이 있고, 또 ‘뒷담화 backbite’의 설화를 낳게 한다면 대화하기 좋은 상대방이라 볼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순방 시에 ‘이 XX들’, ‘X 팔린다.’라는 비속어를 중얼거렸다고. … 흠집 내기를 좋아하는 야당의 원내대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와 여러 방송에서 증폭되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 진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나는 말은 귀소본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거나 험담을 하거나 막말을 한다면 언젠가는 그 화살이 화자 그 자신에게 부메랑 되어 꽂힐 것입니다.
중국의 당나라 재상 징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고 했습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변하듯 말도 변합니다. 사람이 말을 주물러대면 말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줄이고 늘이고 쪼개고 붙이고 비틀고 바꾸고 하는 행위는 곧 사람살이가 험하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의 포털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의 신조어에 밀려 옛사람들이 쓰던 곱고 아름다운 겨레말은 지금 많이 사라졌습니다. 공공기관과 언론에서 외국어 사용을 남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와 남과 주고받는 대화는 굽이쳐 흐르는 여울과 같습니다. 상대가 건네는 말에 맞장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물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므로 내가 구사한 말에서 내 자신이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이 뿜어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한 송이 꽃향기가 되기를 바란다면 팔정도의 바른 말[正語, sammā vācā]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이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의 십악중죄에도 거짓말, 꾸민 말, 이간질하는 말, 거친 말의 네 가지를 악업 짓는 삿된 말로 분류합니다. 
우리의 삶은 상처투성이입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고의 또는 실수로 나에게 말로 상처를 입힐 때 불쾌하거나 성내는 느낌을 일어나더라도 이를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낙엽처럼 떼여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랑스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친절에 대한 의지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외우고 생각하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대가 안전하기를!”, “그대가 건안하기를!”, “그대가 행복하기를!”

/恒山 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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