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20) - 목우자(牧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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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20) - 목우자(牧牛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7.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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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큰 구름이 비를 내리면 두루두루 대지를 적셔주고 삼천대천세계의 많은 초목들은 차별 없이 비를 맞고, 종류와 성질에 따라 수분을 흡수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폭우를 동반한 장맛비는 가뭄 끝의 달고 단 감우甘雨가 아니라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인명피해, 가축피해, 농작물피해, 도로 및 제방 파괴 등을 초래한 고우苦雨입니다.

이를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서 우리의 삶을 반추해보는 것도 좋을 법합니다. 옛사람들은 책을 읽기에 알맞은 넉넉한 때의 세 가지, 즉 겨울과 밤과 비가 올 때를 꼽았습니다. 이를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합니다.
하안거 중에 비 날씨가 잦으니 경행은 줄어들고 좌선은 늘겠지만 이 참에 산문 안팎에서 내 안을 바라볼 수 있는 호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파주 삼학산 약천사 심우도 중 목우 그림
파주 삼학산 약천사 심우도 중 목우 그림

마치 저 큰 구름이 일체 만물에 비를 내리듯이 여래께서 설하는 법은 법우法雨에 비유됩니다.  《법화경》의 <약초유품藥草喩品>에는 “부처님께서 한 음성으로 일체중생에게 평등한 가르침을 베푼다. 근기와 지위와 성품이 다른 중생은 이러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제각기 자신의 그릇만큼 성장하여 궁극에는 똑같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중생 교화의 방편으로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하셨지만, 때로는 비유 설법을 통해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쳤습니다. 《법화경》의 ‘화택비유火宅比喩’, ‘안수정등岸樹井騰’의 우화 등을 비롯하여, 《맛지마 니까야(중부)》에 실려 있는 피안에 도달하면 뗏목을 버리는 <뗏목의 비유>, 독 묻은 화살을 맞은 자가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등을 물어보는 사이에 독이 온 몸에 퍼진다고 하는 <독화살의 비유>, 마음의 때를 씻는 명상은 물 없는 목욕과 같다는 <물 없는 목욕의 비유>, 가르침을 잘못 파악하는 것은 뱀을 잘못 붙잡은 것과 같다는 <뱀의 비유>, 신참 수행자가 닦아야 할 11가지 법을 목우牧牛에 비유한 <소치는 사람의 비유> 등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목우자牧牛子는 보조국사의 자호입니다. 저 자신도 목우자의 정혜결사定慧結社에 감응 받아 마음의 소를 찾기로 하여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습니다. 시절인연이 있어서인지 《맛지마 니까야》의 「소치는 사람의 긴 경」(M33)을 열독한 덕분으로 소를 찾는 과정을 그린 심우도尋牛圖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 대각을 이루신 금강좌는 연화대가 아니라, 목동이 공양올린 공작의 깃털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운 꾸사(kusa, 길상초) 여덟 다발로 꾸며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도 후 세존께서는 목동의 삶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소치는 사람이 소떼를 돌보고 소떼를 불리려면 열한 가지 특징을 갖추어야 하듯, 부처님의 교법에서 도와 과를 증득하려면 열한 가지 덕목을 충만하게 해야 한다고 비유 설법을 하신 것으로 추측합니다.

소치는 사람이 “① 물질을 안다, ② 특징에 능숙하다, ③ 진드기를 제거한다, ④ 상처를 잘 싸맨다, ⑤ 외양간 안에 파리와 모기 등이 들끓을 때 연기를 피운다, ⑥ 물 마시는 곳을 안다, ⑦ 마시는 물을 안다, ⑧ 길을 안다, ⑨ 방목지에 능숙하다, ⑩ 젖을 조금 남겨 두고 짠다, ⑪ 소들의 아버지요, 소들의 지도자인 황소를 특별히 공경한다.”는 열한 가지 특징을 갖추면 소떼를 돌보고 소떼를 불린다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참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표준매뉴얼을 짜고 재가의 삶에서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1. 욕계의 존재인 사람은 물질적인 몸을 갖고 있어서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은 반드시 물질적인 토대에 의지하여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을 지·수·화·풍의 네 가지 요소[四大]와 그 파생물질로 분류하여 관찰할 때 거기에는 사람이나 자아가 없고 단지 조건만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느낌만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질의 몸을 해체하면 지수화풍의 42가지 요소로 분류할 수 있는데, 몸을 존재로 보지 않고 42가지 구성요소로 볼 수 있다면 이 몸을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물질 명상 가운데서 호흡관법과 32가지 몸의 부위에 대한 통찰을 통해 정혜쌍수의 기초를 쌓고 있습니다.
#2. 소치는 사람이 진드기를 제거하고, 진드기에 물린 상처를 잘 싸매듯이,
수시로 내 안에 일어나는 탐욕과 성냄의 조건들을 알고 마음의 문에서 사띠(sati, 正念)를 활성화시켜 수문장 역할을 증대시켜 나갑니다. 눈으로 형색을 보거나 귀로 소리를 들음에 있어 그 표상을 취하거나 그 세세한 부분 상相을 취하지 않아 단지 보고 듣기만 하고 더 이상 자기 동일시를 하지 않습니다.
#3. 소치는 사람이 외양간에 연기를 피우고, 물 마시는 곳을 알듯이, 법우들과 법담을 나누고, 때로는 선지식을 찾아서 여러 가지 의심되는 법에 대해 의심을 해소시킵니다. 
#4. 소치는 사람이 방목지의 적합함을 잘 파악하듯 수행자의 고향동네가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네 가지 영역뿐임을 알고 그밖에 다른 교법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5. 방목지로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듯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의 마차를 타고 세속을 등지고 출세간으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6. 홀로 머물며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하여 12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통해 사성제의 진리를 통찰하고 오온의 ‘비어있음’[空]을 알고 봅니다.
#7. 명상을 들어가기 전과 후에 반드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의례를 올리며 불조의 공덕을 찬탄하고 정법이 오래 머물기를 서원합니다.

8월 30일은 하안거 해제일입니다. 마음에는 문이 없어 시도 때도 없이 번뇌가 들락거립니다. 안거 수행을 통해 검은 소가 흰 소로 변했는지를 점검하고 목우의 법석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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