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4) -살아날 궁리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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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4) -살아날 궁리를 하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09.1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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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1월 1일 맑음

“아이고.”
“아이고, 나 좀 살려 줍서.”
나뭇가지에 묶여 있던 사람들은 대성통곡한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그냥 살려 달라는 말을 한다.
운 좋게 나뭇가지에 거꾸로 묶여 있지 않던 사람이 왜놈들이 멀리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슬금슬금 기어 나와 나뭇가지에 거꾸로 묶여 있는 사람들과 장선비를 풀어 주었다. 이제야 장선비 일행은 마치 죽었다 살아나서 상봉한 듯했다.
“살았다.”
“살았네 그려.”

장선비는 울분을 참지 못하는 듯 입술을 꼭 깨문다.
“내가 왜놈에게 당한 일을 절대 잊지 않으리.”
장선비는 뼛속까지도 싸늘해짐을 기록해 두었다.

「슬프다. 왜놈들은 우리의 원수다. 마땅히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다.」

참판 ‘윤안성’의 시를 읊조릴 때 장선비는 분노가 복받쳐 흐르고 가슴에서 열이 나고 속이 너무 아팠다. 
「윤안성은 조선 중기 문신이다. 여우길, 경섬, 정호관 등이 회답사가 되어 일본으로 가게 되자 이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여 “오늘 화친의 의의를 모르겠네.”라며 지은 시로, 한 번 강을 건너 언덕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이릉(정릉과 선릉)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가지조차 나질 않는구나!」

장선비는 눈물에 피가 섞여 나오고 목이 메어 외쳤다.
“왜놈들, 저 왜놈들의 목을 벤다면, 사람들은 천 번이라도 칼을 들 것이고, 만 번이라도 활을 당기리라!”

「하늘이 세상만사를 만들어 냄에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움이 있다. 비록 중국 태산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큰 호랑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가죽을 깔고 자면 내 몸이 편안하다. 비록 중국 호남성 영릉 땅에서 초목(풀과 나무)도 휘감아 죽이고 사람도 물어 죽이는 뱀의 독이라 하더라도, 보약으로 먹으면 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그렇건만 저 악랄한 왜놈들은 사람들에게 조그만 이로움도 없도다. 왜놈들이 해로움을 끼치는 것이 호랑이와 뱀보다 더 심하다. 하늘이 어찌 이놈들을 만들어 냈을까?」
장선비는 훗날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만물을 만들어 낸 조물주에게 그들에게 죄를 내리도록 부탁하고 싶었지만 나의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구나!”

왜놈들이 떠나자 장선비 일행은 살아날 희망이 없어지고 죽으려는 마음만 생겼다.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하랴!”
일행은 희망이 사라진 듯 봉우리에 세워진 깃대에 옷가지를 내리고 불을 꺼 다시는 왜놈 같은 해적을 불러들임이 없도록 하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진정된 일행을 향해 장선비는 타이르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오고 가는 배들이 모두 해적선들뿐이겠소? 아마 저 왜놈들의 성격이 사람을 해치고 도적질에 익숙해서, 우리들에게 이와 같이 몹쓸 짓을 했던 것이오.”

그러나 일행은 장선비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긴 한숨을 들이 쉬던 일행은 조금 있으니 자포자기(스스로 모든 걸 포기함)한 듯 주위가 조금 잠잠해졌다.

“다른 남쪽 나라 사람들은 마음이 부드럽고 약하며, 인심이 좋고 착하니 우리가 죽을 지경에 있음을 보면, 필시 구원하여 살려줄 것이오. 그러니 목이 메도록 울면서 음식을 먹지 않고 스스로 살길을 버려서야 되겠소?”
장선비 말에 사공 이창성이 대답한다.
“저 남쪽 바다 구름 사이로 아득하게 보이는 것이 필시 유구 나라일 것입니다. 그 곳과의 거리는 불과 700~800리일 듯합니다. 만약 북풍이 불어 돛에 힘을 받아 배를 밀어 준다면 하루정도면 가히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답답하게 여기에 머물며 세월만 허비하지 말아야 할 게 아닙니까?”
사공 이창성의 말에 일행은 잠시 기운을 차려 말했다.
“좋습니다!”
“아주 좋은 게 마씀”    
장선비는 일행을 보며 간곡히 말했다.
“서두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지만, 급히 출발해 낭패를 당하게 되면 옳지 않소.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옳은 일이오!”
“옳소.”
일행은 장선비가 왜놈들에게 당한 수모를 거울삼아 살아날 궁리를 하는 넓은 아량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일행 몇 사람은 도끼를 가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었다.
노도 만들고 세 개의 날을 박은 닻도 만들려 할 참이다.

장선비 일행이 탄 배는 출항 시부터 닻이 날 나무가 한 가닥이었다. 그러니 표류중 위험을 피하려 정박을 하려 해도 닻이 물속 바닥에 박히지 못하고 그냥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장선비 일행이 탄 배는 하염없이 표류를 하게 된 것이다.


어떻든 이 섬을 떠나 살아날 궁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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