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9) - 문답 글을 바다에 빠트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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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의 『표해록』 해부 (19) - 문답 글을 바다에 빠트려 버렸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1.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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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1월 4일 흐림

장선비는 어제 일을 되돌아본다..
옛 추억이 되살아 나는 양 중얼거린다.
「내가 무자년(1768) 봄에 산방산 봉우리에 올라 산방굴사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물통의 크기를 보니 가히 물 8~9말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한 통만 더하면 곧 넘칠 듯했다. 그렇지만 한 통을 더하였는데도 물은 넘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러 그릇의 물을 퍼내도 물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떤 연유인지 알지 못했다.」
장선비는 배 위의 물그릇을 보며 예사로운 일이 아니므로 꼭 기억해 두고자 문답 글로 덧붙여 두었다.

이튿날이 되었다.
온종일 흐린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오후에 서남풍이 크게 일어 파도가 큰 산채만 했다.
큰 배에 탄 사람들은 파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흰 돛을 높이 올렸다.
배는 나는 듯이 빨랐다.

안남 사람 방유림이 글을 써서 장선비에게 물었다.
“그대 나라의 사람인데 다른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향오도에 떨어져 사는 이가 있소. 지금 그 자식들이 번성하여 대대로 향오도에서 살고 있소. 그대는 이를 알고 있소? 모르오?”
장선비가 글을 써서 대답했다.
“알지 못하오. 자세히 듣고 싶소.”
안남 사람 방유림이 글로 대답해 주었다.
“청려국(중국 남쪽에 있는 작은 나라) 향오도는 광동 남쪽 바다 바깥에 있소. 청나라를 피해 도망간 명나라 유민들이 여기 많이 들어갔소. 옛날 내가 바다에 다니다가 이 섬에 표류해 들어간 적이 있었소. 섬 안에 조선 사람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 ‘김대곤’이라는 사람이 마을의 원로로 덕망을 얻고 있었소.”

김대곤은 나(방유림)에게 이렇게 말하였소.
“우리가 여기서 산 지 이미 4세째가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은 원래 조선 사람입니다. 옛날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 남경으로 흘러 들어갔다가, 명나라 피난민들을 따라서 이 섬으로 피난 왔습니다. 여기서 집을 짓고 아내를 얻어 자식과 손자를 낳고 기르면서, 이제는 다 향오도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거기 있는 주민들도 나(방유림)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소.
“김대곤의 할아버지가 의술에 정통해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고 후손들도 아주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멀리 고국을 바라보면서 누대(크고 높게 지은 정자)에 올라가 슬프게 울었습니다. 후에 사람들이 그 누대를 망향대라고 부릅니다.”

장선비가 안남 사람 방유림에게 다시 물었다.
“향오도에서 남경까지의 거리는 몇 리이고, 안남에서 향오도까지의 거리는 몇 리나 되오?”

장선비는 안남 사람 방유림은 서로 문답을 많이 했는데 아뿔싸, 안남 사람 방유림과 헤어져 내가 숙소로 돌아오다 그만 문답했던 글을 청산도의 바다에 빠트려 버렸다. 장선비는 배 바닥을 치며 원통해 한다.
「아! 이 일을 어찌하리. 이제 기억을 더듬어 대략 적지만, 능히 기억해 내지 못한 것들이 많아 가히 한탄스럽다.」

장선비는 기억을 살려 두건 쓴 임준과 진증과 호당과 문답했던 글을 되새겨 보았다.
“그대 나라의 풍속, 인물, 의관, 산천, 지방은 어떠한고?”
두건 쓴 임준이 묻기에 장선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기자’가 남긴 문화를 이어받고 신라와 고려의 나쁜 풍속을 벌하여 유교를 숭상하기에 다른 학문은 배척하고 있소. 나라는 예악과 형벌과 정치로 다스리고 사람들은 효, 제, 충, 신으로 행실을 삼고 있소. 이에 400년 동안 길러진 인재들이 무성하게 일어났고, 문장을 짓고 도덕을 실천하는 선비들이 역사에 다 기록할 수 없이 많소. 세상을 다스리고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할 인재가 부족하지 않았소. 의관은 은나라와 주나라의 옛 제도를 덜고 더하여 명나라의 문체(문장을 아름답게 꾸며 쓴 멋)를 모아 이루었소. 산에는 1만 2천 봉우리의 금강산이 있고, 물에는 세포구와 다섯 상이 옷깃과 허리띠처럼 둘려 있으며 지방은 그 몇천 리인지 알지 못하겠소. 대략 이와 같은데 작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소. 가히 귀국의 산천, 풍토, 의관, 문물에 대해서 들을 수 있겠소?”

「기자는 본래 중국 은나라 현인으로 기원전 1122년 조선으로 들어와 기자조선을 건국하였다고 전해오는 전설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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