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리산방의 엽서(30) - “나는 멈췄다. 앙굴리말라여, 너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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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리산방의 엽서(30) - “나는 멈췄다. 앙굴리말라여, 너도 멈춰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3.11.2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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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항산 김승석

11월의 제주는 감귤 천국입니다. 노지의 감귤나무마다 주렁주렁 노란 감귤이 달려 있습니다. 저의 가족이 20년째 살고 있는 아란야 농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봄에 시비하고 가지치고 예초하며 친환경적 농법으로 자식처럼 키운 감귤이 지금 출하 중입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 Braudel. 1902∼1985)이 밀과 호밀이 서양의 문명작물이고, 벼는 동양의 문명작물이라고 말했듯이 감귤은 제주의 문명작물이 아닐까요. 올해 산 감귤은 태풍 피해가 적었고 열과 이외에 큰 병충해도 없는데다 10월 수확기에 가물어서 당 축적이 잘돼 가격 호조세라고 농협 관계자가 밝혔습니다.
노란색 감귤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에 제주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게 합니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에 따라 노란색의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동양의 일부 문화권에서 노란색은 영성, 깨달음, 지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교통이 혼잡한 길거리에서 노란색은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들에게 더 잘 감지되기 때문에 방향지시등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노란 감귤은 평화의 섬, 제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립니다. 감귤은 겉과 속이 다 노랗지만 제주의 현주소는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제주의 4.3은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고, 강정해군기지건설과 같은 각종의 공공개발로 인한 사회폭력은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핵(核) 위협은 제주까지 그 사정거리가 미치고 있고,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2022년 2월, 러시아의 공격으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불안감은 지구촌 전체로 증폭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옛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군과 하마스 무장대와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양측의 사망자가 1만2천명을 넘어서고 있고 그중 어린아이 사망자가 42%에 달한다는 뉴스가 매일 솟아지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17일~22일 엿새간 서울 성남공항에서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2023"이 열렸습니다. ‘세계 4대 방산수출국목표’를 홍보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속내는 사람을 더 잔인하게 죽이는 기술을 놓고 경쟁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더 많이 수출하겠다는 겁니다. 
6.26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실종자 포함해서 20여 만 명에 이르는 이유도 대량살상무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전은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재앙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것입니다.
끔직한 대량살상무기가 인간의 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뿌리를 둔 국가폭력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면 온전하게 살아남는 자 과연 몇몇이나 되겠습니까?
  
오늘 부처님께 평화의 지혜를 묻고 싶습니다. 「앙굴리말라 경」(M86)에 나온 실화를 이야기하면서 답을 찾아봅니다.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의 영토에 ‘앙굴리말라’라는 희대의 살인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꼬살라 국의 법정 직원이었던 아버지 ‘각가’의 아들로 딱사실라의 대학에서 지적인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동료 학생들이 시기한 나머지 스승의 아내와 불륜관계를 맺었다고 무고하는 바람에 스승의 저주를 받고 성읍에서 쫓겨나 고대인도의 가장 큰 범죄 집단에 들어가 그 리더로서 활약하게 됩니다.
  그는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뭇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었습니다. 마을과 도시를 황폐하고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들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화환을 만들어 걸고 다녔습니다. 그는 지적이고 영리해서 체포를 피하고 빠세나디 왕의 경찰력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앙굴리말라가 사왓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은 농부와 목동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서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 통을 매고 세존의 뒤를 바짝 추적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신통력을 부려 재빨리 걸었기 때문에 세존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세존께 “멈춰라, 사문이여. 멈춰라, 사문이여.”라고 말했습니다. 
 
세존께서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으니 그대도 멈추어라.”라고 말했습니다. 분노와 살해의 폭풍 속에서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한 앙굴리말라는 일체의 폭력을 내려놓고 삭발하여 출가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을에 탁발을 갔다가 아낙네들로부터 돌팔매를 맞고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발우가 부서지고 옷이 찢어졌습니다. 이런 고통이 빈번했지만 꾹 참고 계속해서 탁발 수행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앙굴리말라 존자는 해탈의 행복을 맛보면서 이와 같이 감흥어를 읊었습니다.
“물 대는 자들은 물을 인도하고 / 화살 만드는 자들은 화살대를 곧게 하고
/ 목수들은 나무를 다루고 / 지자들은 자신을 다스린다. / 어떤 자들은 몽둥이로 길들이고 갈고리와 채찍으로 길들인다. / 그러나 나는 몽둥이도 없고 칼도 없는 여여한 분에 의해서 길들여졌다. / 비록 예전에는 살인자였지만 이제 내 이름은 ‘불해(不害)’이다. / 이제야 나는 참된 이름을 가졌으니 /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석가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뒤 26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마그마가 상승하여 분화구를 통해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듯 분노의 화마가 독사의 맹독보다 더 무섭게 온 지구촌을 삼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미움과 증오의 독기를 품으면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기 힘들고 잠은 오지 않고 불안해지기 마련입니다. 세존께서 그 해법으로 자애로써 분노를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는 자애심을 닦아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잠들기 전에 「자애경」을 읊조리고 있는 것도 그 방편의 하나입니다.
  자애명상을 하면, 긴장이 풀리고 온갖 갈등과 대립이 줄어들고, 자기중심을 떠나 소통과 대인관계가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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