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①- 아도화상전(阿度和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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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①- 아도화상전(阿度和尙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1.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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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열전은 조선시대에 승려 각안이 1894년에 지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승의 전기를 담은 역사서로 우리 불교를 빛낸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명상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편집부

아도阿度의 아버지는 위魏나라 사람 아굴마阿崛摩이고 어머니는 고도녕高道寧이다. 그런 까닭에 이름을 아도阿道라고 하였으며, 서경西京 즉 평양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굴마가 사신으로 왔을 때 도녕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는 어째서 아버지가 없습니까?”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위나라 사신이었던 아굴마가 바로 너의 아버지이다.”
아도가 위나라에 들어가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위나라 임금께 주달奏達하자 임금이 도첩度牒을 주어 승려가 되게 하고는 아도阿度라는 이름을 내렸다.
현창玄暢 화상의 문하에 들어가 그의 의발衣鉢(법통)을 전해 받고 아도阿道라 이름하게 되었다. 고국에 돌아와 어머님을 뵈니 그의 어머님이 아도에게 말하였다.
“너는 동경東京(신라)으로 가거라.”
그는 모례毛禮라는 사람이 다스리던 선주善州(지금의 선산)를 지나가다가 산에 들어가 암자를 지으니, 눈 속에 오색이 찬란한 도리화桃李花가 피어 있는지라 그 암자의 이름을 도리암桃李庵이라고 하였으며, 모례가 살고 있던 마을의 이름을 도기道起라고 하였다.
왕의 딸이 병이 났는데 아도 스님이 7일 동안 정근精勤해서 그 병이 나았다. 그러자 왕이 매우 기뻐하면서 천경림天敬林(지금의 흥륜사)을 하사하니, 그곳에 암자를 짓고 부처님을 받들어 공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덟 개의 큰 가람伽藍과 500개의 선찰禪刹을 차례로 건립하였으며 불법을 크게 퍼뜨리게 되었으니, 그때는 양梁나라 무제武帝 보통普通 8년 정미이고 신라 법흥왕法興王 13년이다.
도리사 뒤에 금수굴金水窟이 있었는데, 아도는 그 굴에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으니, 그곳이 곧 동토東土(신라)에 사찰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남평南平 중봉산中峯山의 「죽림사기竹林寺記」에 이르기를,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 화상이 세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진東晋 목제穆帝 영화永和 12년 병진(356)에 위나라 탁발씨拓拔氏의 신하 아굴마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는데 여자 고도녕이 그를 시봉하다가 이듬해 정사년(357) 정월에 아들을 낳았다.
간문제簡文帝 함안咸安 2년 임신(372) 열여섯 살 때 위나라로 들어가 아도阿度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현창 화상을 배알하자 다시 아도我道라는 호를 내려 주었다. 어린아이 때의 이름은 아도阿道였다.
동쪽(신라)으로 돌아오니 그때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고, 냉산冷山 아래 모례毛禮의 집에 이르렀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를 묵호자墨胡子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그가 살고 있던 마을을 도개挑開라고 하였는데, 열제列帝 태원泰元2년 눌지왕 경진(440)의 일이다. 태원 5년 신라 소지왕炤智王 계미년(눌지왕 27, 443)에 도리암桃李庵으로 돌아갔다.”석한奭韓의 내마奈麻 김용행金用行이 아도 화상의 비碑를 만들어서 도리사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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