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② - 東師列傳第一 원효국사전元曉國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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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② - 東師列傳第一 원효국사전元曉國師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1.1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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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617-686)의 속성은 설薛씨이고 이름은 서당誓幢이며, 신라 압량군押梁郡(지금의 경산군慶山郡) 불지촌佛地村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유성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로 인해 임신하였으며, 해산할 무렵에는 오색구름이 땅을 덮은 가운데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수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10년, 신라 진평왕眞平王 39년 정축(617)의 일이다.
장성해서는 당나라로 법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길을 가던 도중에 무덤들 사이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밤에 목이 너무 말라 물을 퍼 마셨는데, 아주 달고 시원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가서 보니 그 물은 곧 해골에 담겨 있는 물이었다. 갑자기 크게 확연한 깨달음을 얻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의 물과 깨끗한 물이 서로 다르지 않은 법이로구나. 여래如來 큰 스승님께서 ‘삼계三界가 다 오직 마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분이 어찌 우리를 속인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다시는 스승을 찾지 않고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와 『화엄경』 주석을 지었다. 언젠가는 상례를 벗어난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거리를 누비며 외쳤다.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면 하늘을 버틸 기둥을 다듬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는데, 그때 태종太宗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이는 귀한 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이를 낳겠다는 뜻이다.”
그때에 요석궁遙石宮에 과부가 된 공주가 있었는데, 원효를 인도하여 그 궁에 들어가게 하여 거기에서 함께 자게 하였더니 과연 설총薛聰을 낳게 되었다.
설총은 태어나면서부터 영민하고 달관達觀하였으며 경사經史에 널리 통달하였다. 그는 신라 십현十賢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방언方言(이두)을 만들어 모든 물명物名에 널리 통해 썼으며, 육경六經을 훈해訓解하였다. 관직은 한림翰林에 이르렀으며, 고려 현종顯宗은 그에게 홍유후弘儒侯라는 명칭을 주었고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도록 했다.
원효 대사는 일찍이 분황사芬皇寺에 머물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저술하였는데 제40 「회향품回向品」에 이르러 붓을 놓아 버렸고, 또 『금강삼매경소金剛三昧經疏』를 지어 그 이름을 각승角乘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소를 타고 소의 뿔에 경을 걸어 놓고 지었기 때문이다.
이미 입적하고 난 다음 설총이 그의 진용眞容을 분황사에 모셨는데, 그때 그 곁에서 예를 올리니 초상(像)이 돌아보았다고 한다.
상주 사불산에 원효암元曉庵과 의상암義湘庵 두 개의 암자 터가 남아 있고, 영변 묘향산에도 척판대擲板臺가 있으며, 동래 금정산에는 원효암元曉庵 화엄대華嚴垈가 있고, 해남 두륜산에도 원효대元曉臺와 의상대義湘臺가 있다. 광주 무등산에는 원효암이 있고, 양주 소요산에도 탁석천卓錫泉, 관음송觀音松, 화정和靜 공주의 대궐 터가 남아 있다.
고려 숙종이 ‘화정국사和靜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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