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 東師列傳 ⑤ - 진감국사전眞鑑國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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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빛낸 사람들 - 함께 읽는 동사열전 東師列傳 ⑤ - 진감국사전眞鑑國師傳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4.03.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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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국사 진영
진감국사 진영

스님의 법명은 혜소(慧昭)이고 속성은 최씨이며, 전주 금마(金馬) 고을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창원(昌元)이고 어머니는 고(顧)씨이다.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한 범승(梵僧)이 말하기를, “아미녀(阿彌女)의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면서 인하여 유리병을 주고 갔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스님을 잉태하였다. 스님은 태어날 때에 울지 않았으며, 어릴 때부터 관례(冠禮)를 치를 나이가 될 때까지 효성이 지극하였다. 집안에 한 말 쌀도 저축함이 없었고 게다가 자그만 땅뙈기도 없이 너무 가난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소규모 장사를 하여 부모를 공양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하자 홀로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었다.
정원(貞元, 唐 德宗의 연호) 20년(804)에 조공 바치러 가는 사신(歲貢使)을 찾아가 뱃사공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험난한 파도 보기를 평탄한 땅처럼 여기면서 중국에 도착하였다. 창주(滄州)에 이르러 신감(神鑑) 대사를 배알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대사는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이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만나 너무도 기쁘구나.”라고 하면서 즉시 머리를 깎아 주고 단번에 인계(印契)를 받게 하였다.
대중들이 서로 일러 말하기를, “동방의 성인을 여기에서 다시 보겠구나.”라고 하였다. 진감 국사의 생김새가 까맣게 생겼기 때문에 대중들은 법명을 부르지 않고 흑두타(黑頭陀)라고 불렀다.
원화(元和, 唐 肅宗의 연호) 5년(810)에 숭산 소림사 유리단(琉璃壇)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니, 그렇다면 거룩하신 어머님이 전에 꾸었던 꿈과 완연하게 들어맞은 것이라 하겠다. 그는 이미 계율에 밝았기 때문에 다시 넓은 학문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재주가 있어 꼭두서니에서 나온 붉은색이 꼭두서니보다 더 붉고, 쪽에서 나온 푸른색이 쪽보다 더 푸른 것과 같은 인물이었다. 솔방울을 먹으면서 고요하게 지관법(止觀法)을 연마한 지 3년, 짚신을 삼으면서 부지런히 널리 교화를 베푼 지 3년을 지내고 태화(太和) 4년(830)에 고국으로 돌아와 상주군(尙州郡) 노악산(露岳山) 장백사(長栢寺)란 절에 주석했는데, 명의의 문전에 병자가 몰리듯이 여러 지방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마치 구름 같았다.
지리산 화개(花開) 골짜기에 이르러 예전 삼법(三法) 화상이 머물렀던 사찰 유지에 법당을 찬수(纂修)하니, 의젓하기가 마치 화성化城)과 같았다. 거기에 머문 지 수년 사이에 제자의 예를 표하는 이가 삼대나 볏짚처럼 열을 이루어서 송곳 꽂을 만한 틈조차 없었다.
기이한 경계를 두루 유람하다가 가장 살기 좋고 훤히 트인 곳에 처음으로 옥천(玉泉)이란 이름으로써 사찰의 문패를 붙였다. 그는 조계(曹溪=육조 혜능)의 현손(玄孫)이므로 육조(六祖)의 영당(影堂)도 세웠다.
대중(大中, 唐 宣宗의 연호) 4년(850) 정월 9일 먼동이 틀 무렵에 이렇게 말하였다.

온갖 법은 다 공(空)한 것이니 
나는 가려고 한다.
탑을 세워 형상을 간직하지 말고 
글로써 자취를 기록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는 앉은 채로 열반에 드니, 세속 나이는 77세이고 법랍은 41년이었다.
국사의 범패 소리는 우아하고 훌륭하여 그 음이 마치 금이나 옥에서 나는 소리와 같았다. 그리하여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집안에 가득했는데 스님은 그들을 가르치는 일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산(魚山)의 미묘한 음악을 익히는 사람들은 다투어 흉내를 내어 가며 옥천사(玉泉寺)의 옛 메아리를 본받고 있으니, 이 어찌 소리로써 중생들을 제도한 교화가 아니겠는가?
헌강왕(憲康王, 신라 제49대 왕)이 시호를 추증하여 ‘진감선사’라 하고 대공영탑(大空靈塔)을 세우게 하였다. 인하여 스님의 행적을 전각하게 하여 영원히 기릴 수 있게 하고는 잇달아 쌍계사(雙溪寺)라는 절의 편액을 내려 주었다.
최고운(崔孤雲=최치원)이 비명을 지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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