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전 선사와 한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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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전 선사와 한퇴지
  • /제주불교
  • 승인 2012.11.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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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을 시켜 유혹하다





   
 
   
 
당나라 중엽에 남양의 등주(登州)땅에서 한퇴지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불교를 심하게 배척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법을 비방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한번은 그가 한림학사라는 벼슬에 있을 때에 ‘불골표(佛骨表)라는 불교의 사리 신앙을 비방하는 상소문을 헌종에게 올렸다가 그 일로 헌종의 노여움을 사 장안에서 팔천 리나 떨어진 변방인 조주의 자사로 좌천되기도 했다.

그 무렵 조주 땅에는 태전(太顚) 선사라는 고승이 오랜 세월을 축령봉에서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는데, 사람들로부터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았다. 한퇴지는 여기에서도 불교를 또 깎아내리고자, 미인계를 써서 태전 선사를 시험하는 덫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조주에서 으뜸가는 미인으로 이름난 기생 홍련을 불러들여 말했다.

“만약 백일 안으로 태전 선사를 파계시키면 후한 상을 내리겠으나, 그러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홍련은 자기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이 있었으므로 쾌히 승낙하였다. 홍련이 험한 산길을 올라 스님의 암자에 도착하니 이미 해질 무렵이었다.

“오래 전부터 스님의 훌륭한 덕을 흠모하여 왔습니다. 이제 스님의 시중을 들며 백일기도를 올리고자 하여 먼 길을 왔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태전 선사의 승낙을 얻은 뒤에 암자에 머물게 된 홍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태전 선사의 시중을 들며 기회를 엿보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선사는 좌선에만 전념한 채 홍련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되자 점차로 마음이 조급해진 홍련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사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나 선사는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진에만 열중하였다. 날짜는 하루하루를 흘러가 마침내 약속한 백일을 하루 앞두게 되었다. 어느 사이에 홍련은 태전 선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하여,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경망스러운 짓이었던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자사 한퇴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자신에게 미칠 크나큰 화가 두려웠다.

마침내 백일째 되는 날 아침에 홍련은 태전 선사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큰 절을 올렸다. “스님! 어리석은 소녀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는 사실 조주 자사 한퇴지의 명을 받고, 스님을 파계시키기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오늘이 바로 한퇴지 대감과 약속한, 백일째 되는 날입니다. 소녀가 이대로 내려가면 큰 벌을 받게 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태전 선사는 섧게 울고 있는 홍련 모습을 조용한 미소로 지켜 보았다.

“그대는 너무 염려하지 말고 이리 가까이 오시오. 한 대감에게 벌을 받지 않도록 하여 드리겠습니다.”

태전 선사는 가까이 다강온 홍련의 치맛자락을 펼치고, 붓에 먹을 묻혀 단숨에 써내려 갔다.

축령봉 내려가지 않기를 십년

색을 보고 공을 보니 색이 곧 공인데

어찌 조계의 물 한 방울을

홍련의 잎사귀에 떨어뜨리겠는가.

홍련이 산을 내려가 치맛자락에 쓰인 이 시를 한퇴지에게 보여주자, 그는 태전 선사를 직접 찾아뵈었다. 한퇴지를 본 태전 선사가 물었다.

“불교의 어느 경전을 보았습니까?”

“별로 뚜렷하게 본 경전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사는 노하여 말하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대가 불교를 비방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누가 시켜서 하였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느껴 비방한 것입니까? 누군가의 시킴을 받아서 행한 것이라면 주인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개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느껴 행하였다면, 이렇다 할 경전을 한 줄도 읽은 바 없이 비방한 것이니, 이는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같이 심한 질책을 받은 한퇴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선사로부터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후 지극한 불자가 되어 오묘한 불법의 진리를 깨달은 한퇴지는 불교를 비방하던 그 붓으로 드날리고 삼보를 찬탄하는 문장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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