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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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이야기》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2.11.21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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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 나한들을 통해


온갖 현실의 문제


극복하려는 의지 담겨


   
 
   
 
절에 가면 대웅전 말고도 산신각 등 여러 전각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나한전은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불교시대사에서 엮어낸 《나한이야기》는 평소에 우리가 몰랐던 나한에 대한 여러 궁금중을 풀어줄 만하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나한의 영험 설화가 산재해 있다.

635년에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져 올려진 22개의 돌덩이를 옮겨 조성된 강화도 보문사의 천연동굴 법당은 지방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나한도량이다.

고려 희종 4년 만연 선사가 16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불사를 하고 있는 꿈을 꾸고 토굴을 짓고 수행하다 세운 만연사의 연기 설화도 흥미롭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꿈을 해몽하기 위해 무학대사를 찾아가 5백나한을 모시고 절을 세우고 기도를 했다는 석왕사의 사찰 연기 설화 역시 5백 나한과 연관이 있다.

부산 금련산 마하사의 동지팥죽에 관련된 나한설화도 만날 수 있다.

조선조 초기의 어느 해 동짓날, 이 절의 공양주가 팥죽을 쑤려고 불씨를 찾으니 벌써 사그라들고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팥을 씻어 솥에 앉혀놓고 불씨를 구하기 위해 아랫마을의 산지기 집으로 내려갔더니 산지기가 하는 말이 “좀 전에 절의 동자가 내려와 불씨를 달라기에 주고 팥죽을 먹여 보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하며 절로 올라와 보니 아궁이에는 꺼졌던 불씨가 살아 있는 게 아닌가. 팥죽을 쑤어 공양드리러 나한전에 갔더니 오른쪽 셋째 나한의 입가에 팥죽이 묻은 흔적이 있더라는 것이다. 나한의 입술이 유난히 붉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응진전 혹은 영산전이라고 부르는 나한전은 조사들이 머무는 암이라는 점에서 나한신앙의 의미를 명백히 해준다.

웅대한 팔공산 거조암은 고려시대 정치적 혼돈과 더불어 승가 또한 권력의 한 자리에서 고요하지 못한 때 승가 본연의 수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보조 스님의 정혜결사의 터다. 영화로운 개경을 떠나 팔공산의 한적한 산사에 머물면서 나온 “정혜결사문”의 의의는 초심과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500성(聖)이라고 하는 아라한을 모신 정면 7칸의 목조건물로 이뤄진 영산전에는 500나한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거조암을 지키고 있다.

목우자 보조국사가 살던 시대에 왕조는 내우외환이 끊일 날이 없었다. 거란과 여진 그리고 몽고족에 의한 도전, 왕실에 대한 무신들의 횡포, 불교마저 혼돈 속에 헤어나지 못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거조암에 내려온 스님은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정혜의 수행을 권했던 것. 이게 바로 돈오점수의 독특한 보조선이다. 여기서 나한신앙은 선과 교와 정토신앙이 융화된 상징적 공간이다.

목각된 16나한이 부처님과 함께 있는 선운사의 영산전. 이 나한들은 해학적이고 천진한 미소를 띠고 있다. 옆에 있는 나한에게 장난말을 하는 듯한 모습, 사나운 호랑이를 강아지 다루듯 하는 묘사, 할아버지들이 모인 사랑방에 들어온 듯 푸근한 모습으로 이는 아마 절절한 사연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을 달래주는 자애로움의 표현이 아닐까.

광주목사였던 김방이 가뭄을 이기기 위해 기우제를 지내던 중 증심사에 오백나한을 봉안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광주 증심사의 나한전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도 궁중내에도 나한전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공간이었다. 나한신앙은 부처님의 16대 제자와 500제자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요, 그 나한들을 희노애락으로 느끼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자기수행의 선종이나 진리를 탐구하는 교종이 아닌 인간의 현실에 부딪친 고난을 벗어나게 하려는 민중적 신앙이 깃든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서는 인도, 중국, 일본의 나한신앙을 조명하고 한국의 나한신앙을 밝히려고 한 가운데 특히 최성렬 교수의 한국의 나한신앙에서는 도상을 곁들여 나한의 명호 및 존상의 배치와 특징 등을 소개하고 있다.《나한이야기》/ 불교서원 刊 /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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