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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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연가》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2.12.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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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에 흐르는

불교적 세계관에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묻어난 詩





   
 
   
 


길을 걷는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고

돌담 구멍 사이로 나드는 바람소리에

상처를 어루만지며

묻고 또 묻는 것.



혼자이면 어떠랴

놀멍쉬멍 걸어간다

길가에 뿌리 내린 들꽃에 눈웃음에

잊었던 고전 말씀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올레길 연가 1〉전문



오영호 시인의 연륜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묻어나는 세 번째 작품집 《올레길 연가》가 나왔다.

인생의 뒤안길을 담담히 되돌아보는 듯한 시 〈올레길 연가 1〉에서 작자는 ‘길’을 걸으며 버거워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는다. 거기서 ‘나’를 내려놓고 ‘바람소리’에 상처를 어루만지며 묻고 또 묻는다. 여기서 길이란 단지 현상적으로 만나는 올레길뿐만이 아닌 인생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숱한 우여곡절과 상처로 아로새겨진 지나온 시간들을 다독이며 묻는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묻는 것일까. 2연에서 작가는 곧 인생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한 듯 가볍게 털고 일어선다. 누구와 함께가 아닌 혼자면 어떠냐고 반문하면서 그저 ‘놀멍쉬멍’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그렇게 길을 가노라면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면서도 ‘잊었던 고전말씀’을 새롭게 떠올리는 것이다.

이번 작품집의 특징이라면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이 더욱 또렷해졌다는 것이다.

“하심(下心)의 문을 열고/ 걷던 길을 다시 간다/ 쌓인 오욕과 미움도 한 마리 나비 되어/ 내 마음 풀밭을 떠나 하늘 훨훨 날아간다.” 〈올레길 연가 4〉의 일부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을 다스리는 것/ 뾰족 돌 채인 발톱에/ 새로 돋는 발톱 하나.”〈올레길 연가 6〉의 일부

이 시에서 보듯 ‘하심’이나 ‘일체유심조’라는 불교적 세계관이 드러난 시어들을 통해 마음이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간다거나, 아픈 상처가 낫는다. 또한 수목원의 천년 느티나무’를 마치 동안거를 끝낸 모습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절마당에 떨어진 하얀 꽃들을 ‘묵언수행 중’이라 표현한 것도 흥미롭다.

그밖에도 4․3의 아픔이 묻어나는 시들과 우리 사회 갈등의 초점이 된 강정마을의 상처를 담고 있는 시도 눈에 띤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인식을 드러내는 한편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들이 불교적 세계관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인생을 아름답게 회향하려는 작가의 종교적 수행이 결실을 맺고 있는 듯하다.

한편 제주시조문학회 창립 멤버로서 1986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오영호 시인은 제주시조문학회장,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한국작가회의, 한국펜클럽제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풀잎만한 이유》, 《화산도 오름에 오르다》등이 있다. 현재는 연담별서(蓮潭別墅)에서 귤나무와 벗하며 살고 있다.



《올레길 연가》/ 오영호 시조집 / 고요아침刊 /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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