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자명 스님 <서울 마하보리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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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자명 스님 <서울 마하보리사 주지>
  • /제주불교
  • 승인 2013.01.0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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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존심 버리고 아이를 기다릴 줄 알아야


이번호 지상법문은 제주불교대학총동창회(회장 오태권)과 (사)제주청교련이 공동 주최로 지난달 15일 제주테크노파크 10층 벤처마루에서 열린 자명 스님 초청 토크 콘서트의 내용 가운데 불교와 교육에 관한 부분을 간추려 실었다.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이 세상이 비록 혼탁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우리 가정에서만이라도 부부가 대화로서 서로 소통하고 이해한다면 아이들은 안정되고 지혜로울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편집자 주



△질문자=천수경에 보면 백천만겁난조우라는 말이 있는데 부처님 법이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법입니까?



▲자명 스님=부처님법을 만나기 어렵다고 표현하는 말이 많습니다. 누구에게나 쉽고, 들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게 부처님법인데 부처님법을 백천만겁난조우라고 말하는 것보다 좀 다른 말로 바꾸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따님이 결혼할 때가 됐는데 불안하단 말이에요. 이러다가 친정엄마한테 물어봤어요. 내 인생에 있어서 남편이란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어머니가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살아봐야 알지.”

그렇다면 남편이란 존재가 굉장히 좋은 겁니까? 굉장히 싫은 겁니까? 굉장히 필요합니까? 굉장히 쓸모 있습니까? 설명을 잘 못한단 말이죠. 그 따님에게 남편이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결혼한 사람치고 남편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남편하고 살아보니까 이렇더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처럼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남편이 어떤 존재입니까 하고 묻는 것과 같아서 한마디로 딱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우리의 삶인데 그냥 남편이 어떻습니까하고 묻는 대답 그것처럼 백천만겁난조우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저도 상당히 궁금하게 꼬마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아빠로서 잘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키우는 게 잘 키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명 스님=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자식이 내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자식은 원래 다 부모에게서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이 원래 태어날 때 모든 걸 다 갖고 있는데 이렇게 하지 말라 이래선 안 된다 함으로써 자꾸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놔둬도 자식은 부모처럼 됩니다. 왜냐하면 형성되기를 부모님과 똑같은 씨앗이 부모님과 똑같은 분위기에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보니까 문제가 있더라 그것을 이해시켜줘야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요즘 교육용어로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살아본 건 부모가 살아봤고 자식은 아직 살아보진 않았단 말이에요. 그것을 시뮬레이션 시켜 자기 스스로 지혜를 얻게 만들면 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제분들이 사고실험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하고 거부감을 느낍니다. 자식이 잘 할 수 있나 없느냐는 부모에게 반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가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자식이 반항하는 순간 하늘이 뒤집어 집니다.

부모가 내 자존심을 버리고 테두리를 쳐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틀 안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게 해야 지혜가 발달하고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주머니에서 돈을 몰래 가져갔다면 그것이 문제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부모들은 처음부터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고 부모들은 그런걸 보면 하늘이 무너지고 앞이 캄캄하단 말입니다.

애들은 부모 주머니에서 돈 갖고 간 게 크게 이상한 것도 크게 문제라고 안 여깁니다. 그것은 실험이고 그걸 가지고 왜 실험이라 말 하냐 하면 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고 모든 가능성을 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한쪽 팔 딱 잘라버리면 머리가 딱 멈춰요. 우리 아버지 고함치고 무서우니까 못하고, 일로는 엄마가 못 가게 하니 못 가고 엄마와 아버지 말 잘 듣고 순하게 이것밖에 못한다.

줄 묶어 놓은 강아지가 밥 주면 먹고 안 주면 말고 그런데 대개 잘 살 것 같은 데 밥 주는 사람 없이는 굶어 죽어요. 우리 자제분을 잘 키우려면 자기 힘으로 자기 두 발도 지상에 서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자기가 만들어야 되는데 부모가 그걸 못해주고 늘 감싸고 정말 대책없이 만들어 그게 자식을 버리는 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늘 헤매지요. 부처님은 어떤 사람도 그 마음속에 다 갖춰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부모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무시무종이라 하는데?



▲자명 스님=무시무종은 원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런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말한 이유는 사실 우리가 어떻게 시작과 끝을 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 시작과 끝이 있는 사고방식이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봤기 때문에 그 생각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란 것은 여기에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법이 다 통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을 내자고 해도 금을 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밝고 어두운 것 나눌 수 없고 좋고 나쁜 것을 나눌 수 없다는 뜻이고 우리가 생각할 때는 딱딱한 것이 물질이라고 하는데 물질은 물질 자체는 파동처럼 연결되어 있고 자체도 금을 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자=자식키우는 부모입장으로서 향락적인 현 세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은데?



▲자명 스님=저속한 풍조에 물들지 않게 자식을 키우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부부가 화합하는 겁니다. 부부가 대화를 잘함으로써 정서적 안정이 자식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는 게 현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짜 향락을 몰라요. 향락이란 영원히 즐거운 것이 향락인데 오늘 즐겁고 내일은 고통스러운 것은 향락이 아닙니다.

이렇게 모르게 된 이유는 상업자본이라는 것은 돈이 많고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돈이 없다는 겁니다. 부처님법으로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돈이 많으면 그 사회는 그쪽으로 갑니다. 나쁜 일을 하고 남에게 해독이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으면 사회는 그쪽으로 갑니다. 부처님법은 분명히 이득이 있는데도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벌고 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지 못합니다. 전부다 침묵합니다.

이 사회 문화 자체가 일관성이 없습니다. 한 번에 다 고치기가 불가능합니다. 나부터 내 자신부터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처님법이 한 사람 한 사람을 공덕을 짓게 만들 수 있느냐 인데, 이것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 분명한 발걸음, 완벽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가능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중 99% 결손가정 중에서 어머니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혼탁하지만 내 가정이라도 편해야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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