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대효 스님<원명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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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대효 스님<원명선원장>
  • /제주불교
  • 승인 2013.02.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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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데 모아져서 ‘나’만 바꾸면 됩니다



내가 빠져야 되는데 나 따라서 하라면

모든 관계에서 갈등의 원인이 된다



눈을 뜬 사람,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이 세상이 고칠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핑계가 있을 수 없어요. 삶이 완전히 180도 달라집니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자기 능력을 개발하는데 모든 걸 집중해요. 그래서 결국 밝힌 게 뭐냐? 나란 존재가 어떤 존재냐? 무한한 능력을 지닌 존재다. 완벽한 존재다 이겁니다. 완벽한 존재.

갖지 않은 것, 가진 게 없는 것, 소유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절망할 게 없어요. 내가 완벽한데 갖지 않은 게 무슨 상관있냐 이겁니다.

부처님이 사는 삶이 자기와 다른 거 없어요. 이게 정리가 된 거예요. 모르는 사람들은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하늘에서 도와주고 받쳐줘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대상에 좌지우지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뭐가 받쳐주고 이러니까 그게 된다고 이래요. 뭐가 받쳐주나? 내가 주인인데, 고거 하나 뿐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서 자기가 주인으로서 산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거, 산천을 떠 갈 필요가 뭐가 있어요, 계곡을 싣고 갈 필요가 뭐가 있어요? 손 댈 거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자꾸 고칠라고 한다고. 멀게는 산천이든 가깝게는 가족이든 뭐든지 맘대로 고칠라고 하는 버릇이 자기 앞에 있는 존재를 다 고칠라고 들어요. 그래가지고 하다보면 말 안들어서 내가 못 산다고 그래요. 고칠라고 안하면 말을 안듣고 할 게 없잖아요. 부부간에 갈등, 부자간에 갈등 이게 전부, 뭐예요? 고칠라고 하는 데서 나와요. 쓸데없이 신경쓰는 거예요. 고쳐지겠어요? 자기 자신을 고치는 게 났지. “니? 이 덜 떨어진 놈”하면서 고칠라고 그래요. 그런데 고쳐지냐고요? 부모가 자식 고칠라고 하면, 부모하고 자식하고는 화목할 수 없어요.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더 똑똑해요. 부모들은 움켜지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요새 자라는 애들은 막 끝없이 펼쳐 나가려고 한다구요. 기가 넘쳐서 그 넘쳐나는 기를 그대로 놔두는 게 낫지. 부모는 갱년기 지나가면서 자꾸 오무라든다고요. 그래가지고 자식을 자기 품안에 넣으려구 하는 거예요. 그 품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기운이 넘치는 게 폭발하지.

우리 삶, 하나하나를 뜯어봐도 이제 눈을 뜬 사람은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삶이 달라져요. 이 세상 고칠게 하나도 없어요. 고칠라고 하면 바쁘고 이 속이 터지는 거예요. 이래서 사람들이 경제도 어렵다고 아니까 막 속이 터지고 주체를 못해서 자살하고 그러잖아요. 그건 돈이 없어 자살하는 게 절대 아니예요. 돈 때문이 아니죠, 자기 자신을 지금 몰라서, 자기 자신을 몰라가지고 자살하는 겁니다.

나라는데 모아져야 되요. 이 세상 모든 게 나라는 데 딱 모아져야 되요. 그래서 나만 바꿔지면 된다 이거예요. 그럼 난, 내가 보는 거, 보이는 거 들리는 거, 어떤 대상에 좌우 안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보는 거, 듣는 거, 이것에 좌우 안 돼야 되요. 거기에 좌우되는 거는, 보는 거 듣는 거에 자꾸 좌우되면 어떻게 되요? 속박이 되니까, 내가 주인인데 속박되어 봐요? 어떻게 되겠어요? 실제 주인이기 때문에 속박되면 못살아요.

옛날부터 종도 자꾸 벗어나려고 한 이유가 뭐냐? 본래 주인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노예가 왜 벗어나려고 하느냐? 본래 주인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 세상 만물은 다 독자적으로 주인이에요. 소의 코를 꿰어가지고 일 시켜보세요. 소가 좋아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개도 풀어 놓은 걸 좋아하겠어요? 목 걸어 붙잡아 놓은 게 행복하겠어요?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전부 다 각자 주인이요, 각자가 고걸 알아야 되요.

사람은 이걸 알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은 깨달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이 만물 중에 사람뿐인데, 이걸 깨닫지 못하면 뭐예요? 짐승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끄떡하면, 개만도 못한 인간, 왜 개만도 못하냐? 개를 욕하면 안 돼요. 왜 개만도 못하냐 이겁니다. 개들은 그거 들으면, ‘개보다 못한 인간인 네가 감히’라고 그럴 겁니다.

인간이 가장 못된 짓을 하고 가장 어리석어요. 짐승들은 안 해야 될 끝에선 딱 안하고 멈추어요. 사자가 사냥하다가 너무 거리가 멀다 그러면 딱 멈춰요. 인간은 화딱지가 나면 막 니죽고 나죽고 해요. 이거는 오히려 짐승한테 배워야 되요. 짐승은 니죽고 나죽고 하는 게 없어요. 인간만 니죽고 나죽고 그러지.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거 또 사냥하면 되지, 왜 지가 죽어요. 사자는 안 죽어요 안 죽어. 인간은 일하다 안 되면 “아이고 죽어버리자.” 그래가지고 목매달아 죽고 농약 먹고 죽고 그러잖아요. 이게 얼마나 어리석어요. 이렇게 어리석은 게 인간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게 인간이에요.

이제는 우리가 주인 된 삶을 사는 시대예요.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 사람이 주인이 된 삶을 살자 그게 아니에요? 원래 그래요. 원래 모든 만물이 생겨날 때부터 각자 다 주인입니다. 다.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다 각자 주인입니다. 각자가 다 주인이에요. 지금 주인입니다. 내가 주인이예요. 그거 밝힌 게 바로 뭐예요? 이게 불교입니다. 그건 다른데서는 안밝혀 놓았으니까, 너무 당연한 사실을 밝힌 것뿐입니다. 그거 별거 아니예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깨닫는 게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됐다, 그거 대단하게 보면 이제 잘난 생각을 내요. “깨달았어. 내가 대단한 거 했다.” 그러면 잘난 생각을 해요. 잘난 생각 내면 이건 잘못된 거예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깨달았다는 게 없다.”요걸 본다고요. 반야심경에도 얻을 바가 없다 이겁니다. 깨달은 게 대단하면 곤란한 거예요. 대단한 게 있다면, ‘난 대단하다’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딴 사람을 얕봐요. 그때부터 얕보는 겁니다.

그렇게 때문에 부처님은 그걸 정리를 한 겁니다. 그렇게 남이 모르는 얘기를 했지만 사실은 그거 별거 아니다 요렇게 얘기한 것입니다. 그거 별거 아니다, 한마디도 한 적 없다, 이것 별거 아니다 이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몰라요. 겸손해서 한 말이다. 겸손하기는 무엇이 겸손합니까, 자기 생각으로 하니까 겸손해 보이지. 부처님은 실제를 얘기한 것입니다. 있는 그래도 사실을 얘기한 것이예요.

부처님은 한 중생도 구제한 바 없다, 한 중생도 구제한 바 없다 하신 것은 바꿔놓은 거 없다 이겁니다. 원래 다 그대로 돼 있었기 때문에, 다 주인으로 돼 있는 거, 바꿔놓은 거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지구상에 어떤 문헌이 그런 표현을 해 놓은 게 어디에 있어요? 자기는 쏙 빠져버려, 쏙 빠진 겁니다. 자기가 빠져야 돼요. 나는 깨달아서 “나는 잘 났다,” 이렇게 하면 이건 빠진 게 아니예요. 자기만 살아난 거지. 딴 사람은 누르고요. 자기가 빠져야 돼요.

엄마가 애 낳아서 자기가 빠져야 애를 마른데서 잘 키우지, 자기만 챙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애기 못 키워요. 이 세상 이치가 다 그렇게 돌아가요. 내가 빠져야 돼요. 내가 빠지는 거, 한자로 말하면 뭐라 그래요? 뭐예요 그게? 무아(無我)다 이 말입니다. 무아, 내가 빠져야 돼요. 내가 없는데 뭐 내가 잘났다는 말 들을 거 뭐 있냐 이거예요? 내가 빠져야 되는 겁니다. 남을 도와줘도 도와줬다는 게 없죠. 내가 빠지는데 뭐 도와줬다는 게 남아요.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막 그렇게 서러워하잖아요. “나는 언덕이 없다.”, “나는 언덕이 없어가지고 이 모양이다.”라고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게 정리가 안돼요. 정리가 돼야 되요. 내가 빠져야 되요. 내가 없어야 됩니다.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하면 대통령이 빠져야 되요. 내가 빠져야 되요. 내가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나 따라서 하라고 하니까 이게 문제에요. “내 따라서 하라.”고게 문제라. 내가 빠져야 되는데.

아버지가 돈 벌어다 놓고 ‘내가 가족 때문에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이거 알아줘야 된다.“이렇게 자꾸 말을 하면 가족들이 불안한 거라. 돈 좀 벌어다 밥 좀 먹여놓고는 본전 다 빼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말하면 할수록 못 살아요. 힘든 거예요. 말하면 할수록, 안하면 안할수록 편안하고. 그럴 거 아녀요. 내가 먹여 살리려고 새벽부터 일어나가지고 하는 하루 일과를 계속 얘기 해봐요. 되씹고 씹고 얘기해 보세요. 가족들이 고문이라 고문이에요. 우리가 내가 빠져야 된다. 원래 내가 없기 때문에, 내가 빠지니까 나는 어떻게 되요? 불행해요 행복해요? 내가 빠지면 행복한 거예요.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요.

그래 본래대로 돌아가면 되요. 본래대로. 그래서 이제 본래 나는 뭐냐? 본래 나를 찾는 이유가 그거예요. 본래 나를 찾는 사람은 본래대로 하는 겁니다. 부처님은 본래 자기를 찾았어요. 그러니까 말을 해도 “나 한마디 한 적 없다.” “나 구제한 적 없다.”라고 하고 싹 빠져 버리잖아요. 말 잘해서 빠진 게 아니예요. 본래 자기가 없으니까 본래대로 갔다는 얘기예요. 본래대로 된 거예요.

우리도 본래 나를 찾아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작용을 자기로 생각해요. 내가 무대에서 박수 한번 받았다. 그러면 그게 나로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길을 가다가 돌부리가 발에 체여 넘어질 뻔 했다 그러면 그걸 나로 생각해요, 이 작용을, 본래 나를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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