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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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도법스님>
  • 정리=김현정 기자
  • 승인 2005.03.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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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애의 삶은 곧 공동체적 삶”



도법스님은 1949년 제주에서 태어났으며 1965년 18세 때 월주스님을 은사로 금산사로 출가했다.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오랫동안 수행했고 한때 금산사 부주지를 맡기도 했다. 1990년 승가결사체인 ‘선우도량’을 결성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고 1995년 실상사 주지를 맡으면서 화엄학림을 통해 불교사상과 전통을 재정립하였다. 1994년 조계종 개혁불사와 1998년 종단이 분규에 휩싸였을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분규를 마무리짓기도 했다. 현재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을 이끌고 있고 귀농학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 등을 통해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6일 탐라생태유아생활협동조합 창립식에서 열린 도법스님 초청강연 요지를 지면에 옮겨 싣는다. /정리·김현정 기자 nike77@jejubulgyo.com

/사진·이병철 기자 taiwan@jejubulgyo.com





요즘은 어디를 가나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21세기는 새로운 방향과 내용으로 가야 된다며 자신들이야말로,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야말로 21세기의 확실한 희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역사,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은 긴 안목과 호흡으로 맥을 잘 짚어서 차근차근 가꾸어져야 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가 확실한 희망을 가꿔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꿔나갈지 좀 더 차분하게,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보는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삶의 문제를 생명과 생태라고 하는 문제인식과 논리로 생각하려는 흐름이 무척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일반적인 경향을 보면 생명이나 생태의 정신과 전혀 동떨어진 방향에서 생명과 생태의 문제가 다뤄지고 있습니다. 좋다니까 유행처럼 우르르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대로 짚어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개발과 성장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이 오염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음으로써 자연의 중요성이 부각돼 너도나도 자연을 보호해야 우리의 식품이 안전해지고 건강해진다고 말합니다. 감기가 걸렸을 땐 감기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이어야만 합니다. 정확하게 병의 원인과 무슨 병인지 정확하게 짚어내지 않으면 어떠한 처방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자연 재앙의 문제, 생명위기의 문제 또는 평화위협의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이유도 바로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잘못된 생각으로 적절치 않은 처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말하는 것이 ‘부자 되는 건 좋은 것이다, 부자 되면 행복하다, 부자로 살 수 있는 세상은 다 좋은 것이다...’ 부자타령입니다. 부자타령은 소위 현대적 표현으로 경제성장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지식과 논리, 이런 사고와 신념체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부자 되는데 그야말로 모든 관심과 열정들을 다 바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부자로 살 수 있으면 정말 그게 좋은 세상일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한 사실확인을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확인을 해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거짓말입니다.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또 이뤄지면 오히려 불행해지고 온 세상이 파멸로 갈 수밖에 없는 이론이 ‘부자타령’ 입니다.

이처럼 사실을 확인하고 이 구체적 사실에 담겨져 있는 진실에 토대해서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정약용 선생은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도 약간 차이점이 있기는 하나 ‘중도적으로 한다, 중도의 길을 간다’라고 합니다.

지난해 탁발순례를 하면서 ‘상류사회 보다도 더 위의 상류사회를 추구하는 아파트’라는 선전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를 나라에 빗대면, 미국을 꼽을 수 있습니다. 21세기 지구촌이라는 무대에서 최고의 상류나라, 경제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국력으로도 최고의 상류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상류나라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미국입니다. 이라크 전쟁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즉 ‘부자타령’의 논리는 실현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미국이 ‘우리 이 정도면 됐어, 우리 또 부자 될 필요 없어’ 하면 ‘부자타령’ 논리가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더 부자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굉장히 부자들입니다. 부자라고 하는 건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보다 더 많은 사람과 비교하면 더 가난한 사람이 되지만 나보다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면 나는 부자인 것입니다. 모두가 부자 된다는 논리는 실현될 수 없고 만약 실현된다면 인류 전체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대재앙의 논리입니다. 우리는 이런 무지와 착각으로부터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 사회에서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게 ‘경쟁에서 이기자, 힘을 길러서 싸워서 이겨야 된다...’ 승리의 논리입니다. 승리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다들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구체적 사실에 깃들어 있는 진실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인식들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지식과 논리에 길들여져 있고 이런 잘못된 사고와 신념체계에 모두가 속고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가 깨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성장을 이룩해내도 아무리 과학기술이 고도화된다해도 우리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반성적 성찰만이 잘못된 착각과 터무니없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흙은 나무를 잘 자라게 해줍니다. 나무는 흙을 살아있는생명의 흙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분리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무애(無碍)이고 세상이치입니다. 지금 여기 나라고 하는 존재도 태양, 달, 별, 또는 산천초목, 흙, 바람, 물, 부모, 이웃, 친구 등 모든 것이 공동체적 관계에 의해서 태어나기도 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생명 그 자체가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우리가 평화로워질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삶을 사는 사회이어야만 그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하는 이유는 생명 자체가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생명의 질서에 충실하게 하려고 공동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애의 안목과 무애의 생활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공동체적인 안목과 공동체적인 생활화가 바로 우리가 가야될 길이기도 하고 그 길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성찰과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더 많이 갖는 다고 해서 더 행복해진다거나 아무리 싸워서 이겨도 평화로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봉사가 코끼리 만지듯 온전한 모습은 보지 못한 채 잘못된 안목과 잘못된 문제의식 즉 잘못된 세계관으로 삶의 문제를 다뤄왔습니다. 이 바보 같은 짓을 끝내고 넘어서자는 것이 우리가 생태공동체를 하는 이유입니다. 또 생태공동체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질서에 대해 빨리 깨닫고 생명의 질서에 맞게 삶의 문제를 다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비유에 들자면 그물과 그물코의 관계입니다. 나라고 하는 그물코와 너라고 하는 그물코, 인간이라고 하는 그물코와 자연이라고 하는 그물코, 그물은 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물코와 그물코의 관계가 단절되어지면 어떻습니까? 그물로서의 온전한 모습이 파괴됩니다. 그동안은 너는 너고 나는 나야, 인간은 인간이고 자연은 자연이야 이렇게 삶을 보았다면 경험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보았고 이제는 진리의 세계관 즉, 구체적 사실 속에 담겨져 있는 진리에 맞는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이런 진리의 세계관으로 우리가 삶의 문제를 바라보고 바로 가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 이것이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이 사고에 맞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리의 세계관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는 무애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공동체 운동을 하는 사람은 공동체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생명의 진실, 존재의 진실, 삶의 진실에 대한 올바른 눈뜸, 분명한 인식 그리고 존중과 감사, 이것이 우리 삶의 문제를 풀어내고 우리 삶의 희망을 가꾸어 내는 가장 확실한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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