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법문-혜총 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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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문-혜총 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
  • /정리=이병철 기자
  • 승인 2013.03.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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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부처님보다 소중한 게 부부입니다




서귀포불교정토거사림(회장 윤규식) 창립 20주년 기념 혜총 스님 초청법회가 지난 17일 서귀포시 강정동 김정문화회관에서 봉행됐다.

이날 법회에서 초청법사 혜총 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은 법문에서 “참 된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부부가 종교생활을 같이하라, 둘째 대가를 바라지 말고 베풀어라, 셋째 수행을 통해 지혜를 쌓으라”고 강조했는데 법문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 주>



   
 
   
 
불교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 불교입니다.

사람을 위시해 모든 생명체는 죽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불교가 위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생명체는 육도에서 윤회를 합니다. 육도의 제일 높은 단계 천당이고, 그 다음이 인간세계입니다. 보시다시피 사람은 높은 단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스스로 깨우쳐야 합니다. 그 다음이 아수라이고, 축생, 아귀, 가장 낮은 단계인 지옥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을 ‘육도(六道, 중생이 선악의 업인에 의해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라 합니다. 결론적으로 천당을 가든, 지옥에 태어나든 괴로움이 있습니다. 왜 그런것 같습니까. 즉,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태어나면 반드시 오는 것이 늙음입니다. 늙으면 반드시 병이 오고 그리고 죽습니다. 이것을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이 고통이다)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만 알면 무지 한 것이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려야 합니다.

얼마 전 TV에서 교육문제에 대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 2만 여명 가운데 유태인이 30%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의 교육 방식은 ‘토론’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자기가 연구한 것을 상대방에게 말하고 그 말이 긍정할 때까지 논의가 끝이지 않습니다. 그 토론의 시작은 “왜?”입니다.

부처님도 출가의 배경은 “왜?”에서 출발했습니다. 왜 우리 부모이고, 남편이고 부인인가. 이 모든 것들이 의심덩어리입니다.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은 축생이나 다를 봐 없습니다.

티베트 스님들도 공부할 때 경론을 벌이고, 우리나라 해인사 등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마다 학인스님들은 강론을 펼칩니다.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저는 은사이신 자운 스님을 40년 동안 시봉했는데 은사 스님께서는 외국에 많이 나가셨습니다. 그 때가 1960년대 입니다. 저는 속으로는 경제가 어려운데 돈과 시간을 허비하면서 외국에 나가는 것을 조금은 비아냥 거렸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은사 스님이 또 권하시면 말씀하시길 “금생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생도 좋은 거야”라는 그 한마디에 깨달았습니다. 20년 동안의 내 옹고집을 접고 미국 LA에 서래사에서 열린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대표로 가서 연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깨쳐야


부처님 출가 배경도 ‘왜’에서 출발




부부가 행복하려면 같은 종교 믿으라


선업의 씨앗, 몇 천배 보배로 돌아와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자카타’라고 있는데 부처님의 전생을 통해 저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잊어버리지 않는 지혜를 갖추신 분입니다. 부처님이 되시고 난 후 일체중생이 여래를 구하고 수십억 만년 전의 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기억하면 높은 단계에 살 수 있고 공부는 그 과정을 밟지 않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스님들이 위대한 것은 증득(證得)하여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새벽처럼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욕락에 빠져서 이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을 깨어있는 상태에서 가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사는 것은 다릅니다.

한생 바꿔서 태어나면 잊어버립니다. 잊지 버리지 않는 것이 불교입니다. 치매가 뭡니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잊고 남편을 잊고 자식을 잊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부처님 당시, 연세 많은 노부부가 계셨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두 부부는 부처님에게 “그동안 부처님을 의지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자식도 잘 기르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행복을 다음 생에도 지키면서 살 수 없습니까. 부부의 사랑을 연장해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첫 번째, 부부가 같은 종교를 믿으라”입니다. 불교를 믿어 서로에게 이익을 주면 서로가 행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포교입니다. 집안에서 존경받는 부부, 그 이상 더 행복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처님보다 더 귀중한 게 남편과 부인입니다. 그곳에서 행복이 옵니다. 부부생활 못하면 부처님 필요 없습니다. 그 다음이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이 내 생명체이기 때문이고 그 다음이 자식입니다. 자식이 최고인줄 알지만 남편을, 부인을 먼저입니다.

생각이 같으면 몸짓이 같습니다. 보통 결혼을 하면 남편한테는 남편만 있고 아내는 없습니다. 이런 착오에서 부부 싸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턴 남편인 나는 없고 아내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입니다.

남편과 부인은 서로에게 거름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같은 종교를 믿으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베풀 수 있는 만큼 베풀어라.’ 내가 이익이 있다하여 베푸는 ‘척’하면서 나중에 이익이 없다면 인정사정 없이 내치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에게 묻습니다. “마야부인께선 얼마큼의 복을 지었기에 보배로 치장해 놓은 왕궁에서 살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이 대답하시길 “어머니는 돌부처에게 쌀 한되를 올려서 이 복을 받았노라. 지금 이 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500생은 전륜왕으로 태어나고, 500생은 왕비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린다. 마지막에 천생의 부처님의 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쌀 한되를 부처님에게 올린 공덕입니다. 베푼다는 것은 재보시 뿐만 아니라 법당 청소를 해 주시는 것도 보시입니다.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대왕은 부처님 당시 때 모래밥을 지어 올린 공덕으로 다음생에 대왕으로 태어나 인도를 통일하고 불법을 포교하게 됩니다. 이것이 베푸는 마음입니다.

태양도 빛을 줄 따름이지 빛 값을 달라 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도, 부인도 그런 역할을 하면 됩니다. 《금강경》의『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외적인 세상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이나 내적인 나의 존재 어디에도 내 것이라 집착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부부에서 서로 사랑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잘못하면 자칫 거래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나는 아내를 천원어치 사랑하는데 아내는 왜 천원어치 사랑을 안 해주냐”입니다. 내가 손해 보는구나라고 느끼면 서로의 싸움이 되고 집안이 깨지는 것입니다. 정말 영원한 사랑은 존경입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 ‘처음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그 안에 이미 깨달음이 성취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은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변한다는 것에 괴로움, 무상하다는 것에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마음을 금강심으로 밀어붙여야 합니다.

지금은 하찮은 보시 같지만 구르고 굴러서 큰 복덕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지혜를 닦으십시오. 《잡보장경(雜寶藏經)》에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부는 물론 부모, 자식, 이웃, 모든 생명체에 대해 교만한 생각을 내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진리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습니다.

불자들은 참선, 염불 등의 다양한 수행의 방편을 통해 지혜를 닦아야 합니다. 지혜를 닦으면 서귀포가 최고가 되고 내 가정 가정이 최고가 되고 이것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금생은 물론 내생도 좋을 인연이 닿을 것입니다.

이런 불교를 믿는 불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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