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 경 (AN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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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이 경 (AN4:40)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08.1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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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그때 우다이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2. 한 곁에 앉은 우다이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도 제사를 칭송하십니까?”

3.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제사를 칭송하지는 않는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나는 모든 제사를 칭송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바라문이여, 그 제사를 통해서 소들을 죽이고 염소와 양들을 죽이고 닭과 돼지들을 죽이고 여러 생명들을 살해하는 이와 같은 살생을 포함하는 제사를 나는 칭송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라문이여, 이와 같은 살생을 포함하는 제사에 아라한들과 아라한도를 증득한 자들은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그 제사를 통해서 소들을 죽이지 않고 염소와 양들을 죽이지 않고 닭과 돼지들을 죽이지 않고 여러 생명들을 살해하지 않는 이와 같은 살생을 포함하지 않는 제사를 나는 칭송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라문이여, 이와 같은 살생을 포함하는 제사에 아라한들과 아라한도를 증득한 자들은 다가가기 때문이다.”

4. “세상이 장막을 벗겨버리며 세상에서 시간과 태어날 곳을 넘어섰고 잘 제어된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은 살생을 포함하지 않는 적절한 제사를 적당한 때에 거행하는 그런 제사에 참석한다.

5. 공덕에 관해서 현명하신 부처님들은 이러한 제사를 칭송하노라.

“어떤 이는 깨끗한 믿음을 가진 마음으로 제사와 슈랏다에 어울리는 공양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좋은 들판인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과 보시를 올려 마땅한 그들에게 올린 공양은 잘 준 것이고 잘 제사 지낸 것이고 잘 얻은 것이다. 그 제사는 좋은 결실을 가져오고 신들도 역시 기뻐한다. 삼보에 신심 있고 슬기롭고 현명한 자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제사를 지낸 뒤 악의가 없는 행복한 세상을 얻으리라“



《해설》



■초기 경전의 주석서에 의하면, 베다를 성전으로 하는 바라문교의 핵심은 제사로서 그 제사는 고대 인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고대 인도의 제사는 크게 공공(公共)제사와 가정제사로 나누어지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중요하게 취급되어 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 제사에는 소마 즙을 헌공하거나 그 외에 우유, 버터, 곡물 등을 헌공하거나 동물희생을 수반하면서 최소 8일간 거행되기 때문에 생명존중의 자비정신을 실천하는 불교나 자이나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동물희생을 기본으로 하는 인도의 제사의식을 강하게 비판하신 뒤 그 대신에 16가지 덕을 갖추어 널리 보시하는 제사를 설하셨습니다. 예컨대 비구스님들께 보시하는 것, 사방승가를 위해 승원을 짓는 것 등을 권장하셨습니다.

■가정제사라 함은 대를 이어가는 제사로서, 오늘날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이 조상 대대로 전승해 지내는 것으로 이른바 유교식 제사를 뜻합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현실적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제사의 의미를 축소하고 제사의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제사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모셔왔던 노보살님들에게 매우 애달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교식 제사의례에 필수적인 고기와 술 대신, 불교식 육법공양의 형식으로 차리고 경전독송으로 지내는 제사는 형식은 갖추되 가문의 소중함과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을 발양했다는 점에서 본경에서 말씀하신 세존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가정제사는 이렇게 변해야 합니다. 자비와 생명존중의 정신이 제사의례에도 침투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불자라면 모든 생명을 내 생명처럼 존중하는 자비심을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이제는 더 이상 제사를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본경에서 제사(yańńa)란 일반적인 제사를 뜻하고, 슈랏다(śraddha)는 바라문들이 죽은 자에게 올리는 제사를 뜻합니다. 티베트불교의 생사관은 사람이 죽으면 중유(中有)를 지나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고 보기 때문에 망자를 깨우치기 위해 49재를 지내왔고, 이러한 제사의식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답습되어 천도재로 정착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한편 중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남방불교에서는 망자를 위한 이런 제사의식이 없습니다. 대승불교 권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취지는 망인의 이름을 빌려 산 자들에게 법, 진리를 베풀려고 하는 것에 있고, 죽은 귀신을 선처 또는 극락으로 왕생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생전에 자기가 지은 업은 그림자처럼 재생의 과정에 에누리 없이 뒤따라가서 시차를 두고 오차 없이 그 과보를 받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기도, 제사, 보시공덕 등을 통해 그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법문하는 것은 전승된 세존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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