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룽꺄뿟따 경 (SN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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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룽꺄뿟따 경 (SN35:95)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3.11.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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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그때 말룽꺄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말룽꺄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저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쇠하고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게 간략하게 법을 설해 주소서. 참으로 저는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이해할 것입니다. 참으로 저는 세존께서 해 주신 말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4-⑴ “말룽꺄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봄만이 있을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면 그대에게는 ‘그것에 의함’이란 것이 있지 않다.”

4-⑵ “말룽꺄뿟따여, ‘그것에 의함’이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거기에’라는 것이 있지 않다. 말룽꺄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여기 이 세상도 없고 저기 저 세상도 없고 이 둘의 가운데도 없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

5. 선서이신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형색을 보고 알아차림(sati)을 놓아버리고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는

애욕으로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도다.

형색으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은 그에게서 증장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심과 불쾌함도 그러하나니

이처럼 괴로움을 쌓는 자에게 열반은 아주 멀다고 말하리.

알아차리면서 법[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을 알고

법에 물들지 않는 자는 애욕에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지 않도다.

그는 법을 알고 아울러 느낌도 감수하지만

괴로움은 소멸하고 쌓이지 않나니

그는 이처럼 알아차리면서 유행하도다.

이처럼 괴로움을 쌓지 않는 자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말하리.”

《해설》



• 말룽갸뿟따 존자는 한역 『중아함』의 「전유경」(箭喩經, 독화살 비유경)을 통해서 존자 만동자(鬘童子)로 번역되어 알려진 분이며, 늦깎이 출가승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문의 법을 닦는데 게을리 해서 본경에서 세존께서 꾸짖으셨고, 이에 용맹정진해서 청정범행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우리가 사물이나 사람 혹은 세상을 바라볼 때 그저 존재하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보지 못하는 습관적 경향이 있습니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눈[眼]의 감각접촉을 통해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일어나 대상[形色]을 받아들일 때, ①받아들이는 마음 → ②조사하는 마음 → ③결정하는 마음 → ④속행의 마음 → ⑤등록의 마음의 순서로 마음이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하면서 대상을 인식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④속행의 마음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반응하고 통제하며 판단하면서 탐욕, 성냄 등으로 대표되는 업을 짓게 됩니다. 예컨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떤 여자를 보고 아름답다는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서 데이트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아의 방어활동이고 고통의 중심축이 된다는 것이 세존의 교설입니다.

•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올 때 우리는 인위적인 의도로써 시비 분별하는데, 이렇게 반응하지 말고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충분하게 경험하고 느낀다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의 ‘그것에 의해’ 마음이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이 세존의 교설입니다.

• 우리가 노래방에서 애가(哀歌)든지, 비가(悲歌)든지 선곡을 해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애욕으로 물든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거기에 묶이고 또 소리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느낌들이 증장하고, 끝내 괴로움이 쌓이게 됩니다. 그 순간 그대는 ‘거기에’ 묶여 있는 자가 됩니다.

• 그러나 가을의 국화꽃을 볼 때, 청명한 하늘의 종달새 소리를 들을 때, 내가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꽃이 보이게 하고, 또 새소리가 내게서 들려지게 하도록 알아차리고 지혜롭게 잡도리한다면 ‘거기에’는 분별하고 판단하는 자아가 없으므로 괴로움도 없습니다.

• 시각의식을 통해 영원하다든가 아름답다는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탐욕이라는 번뇌와 함께 보는 것이 됩니다. 소리의식을 통해 쓴 소리 (비난) 또는 단 소리(칭찬)로 마음에 잡도리하면 성냄 또는 자만과 함께 듣는 것이 되어 불선(不善)의 업보를 짓는 것임을 유념해야 합니다. 알아차리면서(sati) 형색을 보되 형색에 물들지 않는 자, 소리를 듣되 소리에 물들지 않는 자는 표상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무상삼매(無相三昧)에 들어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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