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애 멸진 경 (MN38)
상태바
갈애 멸진 경 (MN38)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02.09 2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알음알이[識]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惡見]가 생겼다.

3. 비구들이 사띠 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 없자 세존을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아서 세존께 사띠 비구가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한 사실을 말씀드렸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내 말이라고 전하고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를 불러오라.’라고 말했다. 세존의 부르심을 받은 사띠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가서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세존께서 사띠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5-⑴ “사띠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인가?”

5-⑵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합니다.”

6-⑴ “사띠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알음알이인가?”

6-⑵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7.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緣而生]고 설했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쓸모없는 자여, 그러나 그대는 그대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그대를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8. "비구들이여, 마치 어떤 것을 조건하여 불이 타면 그 불은 조건에 따라 이름을 얻나니, 장작으로 인해 불이 타면 장작불이라고 하고, 지저깨비로 인해 불이 타면 모닥불이라고 하고, 짚으로 인해 불이 타면 짚불이라고 하고, 쓰레기로 인해 불이 타면 쓰레기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알음알이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눈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귀와 소리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귀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코와 냄새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코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혀와 맛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혀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알음알이가 몸과 감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몸의 알음알이라고 한다. …“



《해설》



본경은 급고독원에서 세존께서 어부의 아들 사띠 비구의 일화를 계기로 비구들에게 설하신 법문입니다.

반야심경의 오온(五蘊) 중, 식온(識薀)은 대상을 안다는 의미로서의 마음[識] 무더기이고,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은 작용으로서의 마음의 무더기를 뜻합니다.

마음의 의미에 여러 초기경전에서는 식별한다고 해서 알음알이[識]라고 정의하거나, 주석서에서는 대상을 안다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 또는 알음알이가 감각장소[六根]와 감각대상[六境]을 반연하여 생긴 조건발생이라는 것이 세존의 교설임에도 사띠 비구에게는 이 알음알이가 게속되고 윤회한다[常見]는 그릇된 견해가 생겨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불자들 중에서도 사띠 비구와 같이 마음[識]이라는 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불자들이 다수 있습니다.

한국불교에서 마음 깨쳐 성불한다거나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 마음 외에 부처란 없다[心外無佛]라거나 일체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一切唯心造]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거나, 참나[眞我]를 찾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법문을 펼치면서 마음을 절대화하는 스님들이 계신데,

이와 같이 마음을 절대화하면 금강경에서 타파의 대상으로 강조되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놀음에 빠져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세존의 고구정녕한 가르침이십니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알음알이 또는 마음을 윤회의 주체로 인식하는 사띠 비구의 사견(邪見)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연기의 가르침으로 무아를 명쾌하게 천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라는 연기의 정형구는 그 일어남[集]과 소멸[滅]이 각각 조건 지어진 관계라는 뜻입니다.

괴로움[苦]이란 윤회의 괴로움을 말하고, 오온(五蘊)이 무아[空]임을 깨달아야만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데, 연기는 그 무아를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이자 도구인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께서 오온이 무아임을 설하셨습니다. 따라서 오온의 다섯 번째인 알음알이[識], 즉 마음도 실체가 없는 것이요, 단지 찰나생 · 찰나멸의 흐름일 뿐임을 바르게 알고 [知] 보는[見] 자만이 성자의 흐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