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영혼, 극락왕생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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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영혼, 극락왕생 바랄 뿐”
  • 이병철 기자
  • 승인 2005.04.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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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증언 본풀이 마당서 증언한 오갑추 할머니  
 
지난달 28일 제주4·3연구소(소장 이규배) 주최 ‘항쟁의 역사 고난의 기억-4·3증언 본풀이마당’의 증언 무대에 선 오갑추(82·제주시 노형동·덕흥사 신도) 할머니와 잠시 인터뷰를 나눴다.

“4·3으로 남편, 시아버지를 잃고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7개월 동안 온갖 고문으로 난 제 정신이 아니었어.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부처님을 찾았지. 기도를 올리다보면 아침이 밝아오고…. 그때 악몽을 떨치려고 부처님께 의지를 많이 했지.”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하소연 할 수 없었던 그 억울한 아픔을 처음 들어준 것은 어느 이름 없는 암자의 부처님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그 후론 오등동 덕흥사를 20년간 찾고 있다고 했다. 다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 남편은 산간에서 내려온 주민들을 죽이는데 동원됐어. 그 때 친척들이 산으로 많이 피신 갔는데, 군인들이 어느 날 총으로 그들을 죽여 놓고 다시 돌로 짓이기라고 못할 짓을 시켰지.” 오 할머니는 남편이 처했던 처참한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며 집을 나가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인들에게 붙잡혀 남편은 물론 시아버지까지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오 할머니도 이미 제주경찰서에 붙들려와 3살 난 딸아이와 함께 유치장에 있었고 이후 7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 때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로 때리면서 취조를 했어.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몸이 성한 곳이 없다니까.”

우여곡절 끝에 험난한 세상에 딸아이와 홀로 남겨졌고,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을 정말 외롭게 살아온 것이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천도재는 지내주셨는지 묻자, 흐르는 눈물부터 훔친다.

“마음으로야 부처님에게 기도했주. 억울하고 불쌍하게 죽은 영혼 극락정토에 보내달라고…. 근데 돈이 있어야 뭐라도 하지.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어. 마음으론 백번 천번 기도했어.(울음)” 60여 년 동안 피맺힌 한을 품고 살았을 오 할머니의 가슴은 이미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있다.

오 할머니는 “당시 유치장에서 천연두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며 키운 딸아이가 벌써 60줄이 다 돼가. 앞으로도 잘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고, 4·3때 억울하게 죽은 모든 영혼들이 극락정토에 가길 바랄 뿐이야”라며 불편한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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