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주기 ‘4·3’ 특집/불교인물조명① - 해방공간에 묻힌 지식승 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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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주기 ‘4·3’ 특집/불교인물조명① - 해방공간에 묻힌 지식승 원문상
  • 강승오 기자
  • 승인 2005.04.02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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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희생, 공덕비도 못 세워

불교혁신·교육사업에 매진

중문중학교 설립한 지식승

예비검속에 어이없는 희생

공덕비 추진…학교측 무성의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제주4·3은 오늘날 까지도 많은 진통을 겪고있다. 그러나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와 4·3수형인에 대한 희생자 선정이 최근 결정됨에 따라 희생영혼과 제주도민의 명예회복에 새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제주불교신문은 해방이후 불교혁신과 사회참여의 길을 걷다 4·3에 휘말려 생을 마감한 대표적인 불교인물 세명의 행적을 제주불교사연구회의 도움으로 발굴하여 3회에 걸쳐 연재 한다. <편집자>



   
 
   
 
“원문상 선생님께 중학교때 역사를 주로 배웠어요. 그분은 해박한 역사지식과 함께 매우 인자하고 후덕하신 분이셨죠. 때문에 따르는 제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하원 출신인 스님께서는 중문중학원을 설립한 후배 이경주와 함께 중문중학교의 전신인 부문중학교를 건립하고 정식학교로 인가 받을 수 있게 한 분이죠. 당시 대단한 교육열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서울에서 고학하셨고, 경북 기림사에서 출가하셨습니다. 그때가 1940년쯤이지요.”

해방이후 제주불교청년단과 제주승려대회를 주도하며 불교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이후 고향인 중문지역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다가 ‘좌익극렬분자’라는 누명을 쓰고 예비검속에 희생된 원문상 스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이다.

해방직후 불교혁신운동을 주도하던 스님은 당시 불교계 내부의 알력으로 인해 교무원 소임을 그만두고, 1945년부터 틈틈이 관여해오던 당시 중문중학원에 47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재직하게 된다.

교사로 재직중 학생과 지역민들에게 높은 신망을 받던 스님은 중문중학원을 부문중학교로 정식인가 받는데 누구보다 앞장섰으나, 교감으로 부임한 서북청년단원 전문규의 모함으로 ‘좌익극렬분자’로 몰려 한국전쟁 직후의 예비검속에 희생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 제자 조명철씨(72·중문중학교 1회)는 “전문규가 부임해서 보니 원스님과 이경주 선생에 대한 학생과 주민의 신망이 두터워 교장으로 승진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 모함을 해 두분 모두 예비검속으로 희생됐다”며 “훗날 지역주민들과 당시 3학년 학생들이 그와 관련한 진정서를 도지사에게 제출하고 전문규를 쫓아냈다”고 증언하고 있다.

조씨 이외에도 강통원(71·제주대 명예교수)·김택춘 씨(86·서귀포시 하원동) 등 당시 스님의 제자들은 “스님은 이념적 대립 속에서 희생된 많은 젊은 지식인 중 한 분 이셨다”며 “좌익분자였다기보단 오히려 민족주의자였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즉, 스님은 현대사의 아픔인 4·3과 한국전쟁을 연이어 겪으며, 출가자로서 그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펼치고자했던 지식인으로 마땅히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다.

이런 스님을 기억하는 몇몇 제자들은 몇년전부터 스님을 비롯한 당시 중문중학원 설립자인 이경주와 이승조 선생의 공덕비를 교내에 건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사업은 현재 중문중학교 총동문회(회장 박상규) 사업으로 추진돼 오다 ‘예비검속 희생자’라는 자격시비에 잠시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마땅히 설립자의 뜻을 기려 학생들에게 산 교육을 시켜야할 학교측의 무성의한 태도도 일조하고 있다. 공덕비 추진과 관련, 본지 취재과정에서 학교측은 “이 문제에 관해 더 할 말이 없다”는 반응으로 일관해 “아직도 낡은 이데올로기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에 대해 총동문회 박상규 회장(67·서귀포시 시의원)은 “공적비 건립사업을 총동문회에서 추진하기로 해 회장단에서 논의 중에 있다”며 “하지만 원문상 스님과 당시 예비검속자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어 보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4·3에 대한 정부차원의 정식사과가 이뤄졌고, 최근 4·3 수형인들도 희생자로 결정되는 오늘날 학교를 건립하고, 교육자로서 매진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예비검속에 희생된 지식인을 기리는 공적비 건립사업이 지지부진 한데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건네고 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아픔을 딛고 이 땅에 평화의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그 희생에 대한 정당한 예우가 선행될 때 ‘평화의 섬’을 외치고 ‘상생의 사회’로 가는 길이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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