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띠야 경 (SN 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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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띠야 경 (SN 45:30)
  • /소치 김승석엮음
  • 승인 2014.08.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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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의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웃띠야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웃띠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한적한 곳에 가서 홀로 앉아있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말씀하셨다. 그러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이란 무엇인가?’라고.”

4. “장하고도 장하구나, 웃띠야여. 나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설하였다. 어떤 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인가? 웃띠야여,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 몸으로 읺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웃띠야여, 나는 이런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설하였다.”

5. “웃띠야여, 이런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팔정도]를 닦아야 한다.”



《해설》



• 우리 인간들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세계, 즉 욕계(欲界)에 사는 존재입니다. 이 욕계의 존재로는 인간 이외에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하늘에 사는 거친 육체를 지닌 존재[天神]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천신으로 태어나려면 믿음과 보시와 지계와 같은 윤리적 덕목을 지녀야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려면 오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수라는 분노에 의해서, 축생은 어리석음과 탐욕에 의해서, 아귀는 인색함과 집착에 의해서, 지옥은 잔인함과 살생을 저지르는 것에 의해서 각 태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 이 세상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의 각 부딪침에 의해 전개됩니다. 우리는 학습과 경험에 의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때 아름다운 소리라고 압니다. 그러나 그 형색이나 소리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느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지 않게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름답다는 것은 대상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 누구나 아름다운 것은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계속해서 더 보고 싶고, 그런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이 느낌으로 인해 갈애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탐욕은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오지 않습니다. 마치 종이에 물이 번지듯이 소리 없이 매우 신속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탐욕, 갈애가 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런 갈애는

눈으로 볼 때 즐거운 대상으로,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즐거운 소리로,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좋은 향기로, 혀로 음식을 맛볼 때 감칠맛으로, 피부에 감촉이 닿을 때 부드러움으로 각 나타납니다.

• 우리가 산다는 것은 욕망의 발로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탐욕은 탐욕을 먹고 더욱 더 성장합니다. 그래서 탐욕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마치 새가 올가미에 걸려 있듯이 중생들은 탐욕에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탐욕으로 인해서 생기는 감각적 욕망은 행복이 아님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탐욕은 남과 나눌 수 없고 지나친 탐욕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또한 탐욕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탐욕의 배후에는 무지가 있으며 탐욕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성냄이 일어납니다. 탐욕은 자신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만듭니다.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한 인류 투쟁의 역사도 곱씹어보면 자신 속에 악마처럼 침투하는 욕망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 탐욕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일어납니다.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탐욕이 그 하나입니다. 자발적 탐욕은 자신의 축적된 성향, 습관으로 인해서 일어나는데, 자기 자신이 이것으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좀처럼 수행을 통해서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 둘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서 일어난 탐욕인데, 현대인들은 인터넷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의해 이런 탐욕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 탐욕은 균형을 잃는 욕망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자기 방어적이고 공격적이어서 인간과 사회관계를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탐욕, 갈애에 대한 멈춤[止]과 통찰[觀]을 통해 자신의 탐욕을 절제하고 버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관(止觀)수행을 통해 일상의 사건 속에서 원인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탐욕을 버리고 상대에 대한 자비와 배려로 가득 찬 착한 마음을 베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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