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번뇌 경 (M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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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번뇌 경 (MN 2)
  • /소치 김승석 엮음
  • 승인 2014.10.0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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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3.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는 번뇌들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는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4.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5. 그는 다음과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한다. “나는 과거 생[前生]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을까? 나는 과거 생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 생에 어떻게 존재하였을까? 나는 과거 생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 생[來生]에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나는 미래 생에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 생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떻게 될까? 나는 미래 생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할까? 나는 현재에도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도대체 나는 있는 것인가? 나는 없는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라고”

6. “이와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에게 여섯 가지 견해들 가운데 어떤 견해가 생겨난다. ① ‘나에게는 자아(아트만)가 있다.’ ②‘나에게는 자아가 없다.’ ③‘나는 자아에 의해서 자아를 인식한다.’ ④ ‘나는 자아에 의해서 자아가 없음을 인식한다.’ ⑤‘나는 무아에 의해서 자아를 인식한다.’ ⑥ ‘나에게는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의 과보를 감수하는 자아가 있는데, 바로 그 자아는 영원하고, 지속적이며, 무한하며, 변하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영원히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7.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해에 빠짐, 견해의 밀림, 견해의 황무지, 견해의 뒤틀림, 견해의 요동, 견해의 족쇄라 한다. 견해의 족쇄에 계박되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8.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① ‘이것은 괴로움이다’ ② ‘이것은 괴로움이 일어남이다’ ③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④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이와 같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세 가지 족쇄가 제거되나니 오온을 영원한 자아라고 보는 자아에 대한 환상[有身見], 불법승 삼보에 대한 의심[疑], 단순한 의례나 금기에 대한 집착[戒禁取]이다. 이를 일러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해설》

‘잡도리’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중국에서는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여리작의(如理作意)로 옮겼는데, 이치에 맞게 사유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 교수는 ‘연기(緣起)의 원리에 맞게’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사성제를 알고 보는 힘으로 풀이합니다.

세존께서는 <쌍윳따 니까야> 등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나’라는 존재란 오온(五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나에게 자아가 있다.”는 것은 상견(常見)이고, “나에게 자아가 없다.”는 것은 단견(斷見)인데, 여기서의 단견이라 함은 불교의 무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유물론자들의 주장을 말합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본경의 여섯 가지 견해 중 ③,④의 견해에서 <앞의 자아>는 오온 중 인식의 무더기[想蘊)을, <뒤의 자아>는 나머지 무더기[色蘊, 受蘊, 行蘊, 識薀]을 뜻하고, ⑤의 견해에서 <무아>는 인식의 무더기를, 그 <자아>는 나머지 무더기를 뜻하고, ⑥의 견해는 유신견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견해의 동물입니다. 일체 중생은 매 찰나 대상과의 연기적 관계 속에서 수많은 인식,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인식, 생각은 항상 견해, 또는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본경의 여섯 가지 견해는 모두 삿된 견해로서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설하셨습니다. 이와 달리 유위법(有爲法)들에 대하여 있다거나 없다는 유무(有無)의 관점에서 통찰하지 않고, 제법(諸法)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입장에서 통찰하는 것이 지혜롭게 잡도리함이고, 이를 반연하여 정견(正見)이 생겨난다고 설하셨습니다.

금강경 31.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에 “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사상(四相)과 사견(四見)은 그것들이 제 아무리 수승하고 미묘하다고 하더라도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의 맞닿음에 의한 느낌에 연(緣)한 것일 뿐이니, 참다운 수행자는 이 인식[相]과 견해[見]의 희론에 애쓰고 휩쓸리지 말고 느낌에 연(緣)하여 일어난 갈애를 수관(隨觀)하라고 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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