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 경 (AN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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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경 (AN4:182)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2.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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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세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무엇이 넷인가?”



1. “‘늙기 마련인 법을 늙기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2. “‘병들기 마련인 법을 병들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3. “‘죽기 마련인 법을 죽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4.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再生]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며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가져오는 그러한 악(惡)한 업(業)들에 대해 그 과보가 생기지 말라.’고“‘병들기 마련인 법을 병들지 말라.’고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세존]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누구도 보증하지 못한다.”



《해설》



• 어느 누구도 늙음과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여래 십력(十力)을 갖추신 부처님의 육신마저도 늙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지수화풍이라는 4대의 작용(에너지)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이 몸은 지수화풍이란 4대의 요소가 있어서 성장-유지-쇠퇴-죽음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겪습니다.

• 불교에서는 흔히 ‘삶’이란 정신적 에너지와 육체적 에너지의 부단한 상호작용에 의지하여 인과의 연속작용이 이어 나가는 것으로 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생노병사(生老病死)는 인과관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난 변화 그 자체입니다. 반면에 ‘죽음’이란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이 멈추는 것으로 봅니다.

• 불교에서는 죽음이 결코 불가사의한 일이 아닙니다. 죽음은 몸의 변화일 뿐이고 마음의 에너지가 미래의 다른 몸에 상속되어 전생에 대한 기억이 흘러간다고 봅니다. 이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영혼불멸의 상속과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 부처님께서 연기법을 발견하시고 존재(=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일어남의 상속을 인과적 요소와 연관시켜 업(業)의 법칙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삶의 인과과정이 어떤 절대적인 조물주나 천신의 계획적 의도나 조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업에서, 업으로부터 전개된다는 진리를 깨달으셨던 것입니다. 이 업(業)의 법칙이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 짓는 불교를 불교답게 하는 교리입니다. 빠알리 어(語)로 업(kamma)은 의지적 행위 또는 의도적 행위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행동을 야기하는 것은 의지적 생각임을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인간이란 자기 자신이 지은 생각의 주물공장에서 스스로 찍어낸 작품일 따름이다.”라고 천명하시고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사람들의 윤리적 쇄신을 강조하셨습니다.

• 세존께서는 인과법의 토대 위에서 존재를 계속시키는 자양분을 축적시키는 것은 번뇌에 찬 오염된 마음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러한 오염원을 끊어버려 마음속에 불순물을 없애버리면 인과의 속박, 즉 윤회의 굴레에서 해탈하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 청정한 마음은 모든 인과 작용으로부터 해탈케 하나, 탐(貪)진(瞋)치(痴) 삼독으로 번뇌에 물든 마음은 지속적 인과 작용을 촉진하게 하는 자양분이 됩니다. 그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한 생은 시간상으로 따져 보면 별 것 아닌 듯 보일지도 모릅니다만 금생의 모든 행위는 오차 없이 인과법에 따라 다음 생을 조것 짓게 됨을 알고 본다면 우리는 스스로 도덕적, 윤리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숭고한 삶이 지계와 보시행입니다.

• 지금 우리는 도덕불감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탐욕의 자본주의가 활개치고 분노와 폭력으로 들끓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입니다. 수레바퀴가 소의 뒷발굽을 따르듯이 불선(不善)의 업인(業因)이 있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선업(善業)을 지은 바가 없는데도 단지 부처님께 복(福)을 빈다고 해서 복을 준다고 한다면, 이것은 인과의 법 즉 원인과 결과의 법인 연기법(緣起法)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인과의 법칙은 세상의 어떤 법칙보다 엄격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한번 지어진 업은 당장에 그 과보를 받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시차를 두고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지은 업의 종류와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그 업보도 각각 다르게 나타납니다.

• 사람들이 업의 법칙만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더라도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불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윤리적으로 건전치 못한 마음상태가 일어나면 이를 멈추게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그런 불선의 마음상태가 아예 일어나지 못하도록 쉼 없이 수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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