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죽음 경 (SN5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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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죽음 경 (SN56:106)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2.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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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그때 세존께서는 조그만 먼지를 손톱 끝에 올린 뒤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손톱 끝에 올린 조그만 이 먼지와 저 대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저 대지가 더 많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올리신 조그만 그 먼지는 아주 적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올리신 조그만 그 먼지는 대지에 비하면 헤아릴 것도 못되고 비교할 것도 못되며 아예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인간으로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중생들은 적고 인간으로 죽어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많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해설】



• 한번 태어난 자는 한 번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이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인과법칙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가나 하는 의문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죽고 난 후에 내생이 있다고 믿는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보는 유물론자들(=사후단멸론)도 있는가 하면, 전통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고 죽은 뒤 선한 사람은 천당에, 악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되며 그 천당과 지옥은 영원하다는 ‘사후 존속론’의 입장에 있습니다.

•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이란 비인격적[無我] 의식의 흐름일 뿐이고 그것이 무지와 갈애의 충동을 받아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흐르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불멸의 영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상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계속 몸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필시 불멸의 영혼이 있을 거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들은 사후단멸론도 사후불멸론의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의 입장에 섭니다.

• 어떤 형태로든 사후 존속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현실의 삶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강조하고 선업선과를 믿으나, 후자의 입장에서는 비윤리적이고 악업에 대한 죄와 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삶과 죽음의 인과과정이 어떤 절대적인 조물주(기독교의 하느님)나 천신의 계획적 의도나 조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업에서, 업으로부터 전개된다는 진리를 깨달으시고 인간의 금생 또는 내생의 행복을 위하여 지계와 보시 바라밀을 강조하였습니다.

• 불교에서는 우주 법계 내에 몸과 인식이 같거나 다른 다양한 부류의 존재들이 실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지에 의한 갈애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돼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의 경지에 들어서지 않는 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반드시 육도(지옥-축생-아귀-아수라-인간-천상)를 윤회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죽은 바로 그 존재와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대해 우리 범부들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은 나가세나 스님이 ‘밀린다’ 대왕에게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재생(再生)은 있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육화(再肉化)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 우리가 죽을 때 마치 나무가 그 모든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이생에서 누리던 갖가지 기쁨과 슬픔을 다 버리고 갑니다.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면 이미 잘못 산 것입니다. 죽음의 마음에 염라대왕의 모습이 나타나고 다음에 몸을 받을 곳이 인간계보다 낮은 삼악도일 것이라는 징표가 나타난다면 금생에서 지혜의 광명을 찾아 팔정도를 닦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생에 지옥이나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과거에 큰 공덕을 지었다는 것인데, 금생에 지계와 보시의 공덕을 쌓지 못했다면 내생에는 삼악도에 떨어진다는 것이 세존의 교설입니다. 세존께서는 사람의 몸 받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처럼 희유할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정법을 만나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들고 이에 더하여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 태어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정법이라 함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를 말합니다.

• 세상은 욕망과 성냄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다시 인간이나 천신으로 태어나고 싶다면 더 나아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이 육도 윤회의 세계를 창살 없는 감옥으로 여기고 ①보시바라밀을 소원 성취시키는 암소로, ②지계바라밀을 값비싼 보석 장신구로, ③인욕바라밀을 튼튼한 갑옷으로, ④정진을 소원 성취시키는 천리마로, ⑤선정바라밀을 금강석으로, ⑥지혜바라밀을 피안으로 가는 반야용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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