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닷따 경(SN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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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닷따 경(SN41:7)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5.04.0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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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고닷따 존자는 맛치까산다에서 망고 원림에 머물렀다.

2. 그때 찟따(Citta) 장자가 고닷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고닷따 존자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찟따 장자에게 고닷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3. [존자] “장자여, 어떤 것이 표상 없는 마음의 해탈입니까?”

[장자] “존자시여, 여기 비구는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서 표상 없는 마음

의 삼매에 들어 머뭅니다.”

4. [존자] “장자여, 탐욕은 무엇이 있는 것이고 성냄은 무엇이 있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무

엇이 있는 것입니까?

[장자] “존자시여, 탐욕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 성냄은 표상을 만드는 것이고, 어리석음

은 표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번뇌 다한 비구는 이것들을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5. “장자여, 그대는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에 정통한 통찰지의 눈[慧眼]을 가졌으니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이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대에게 큰 이득입니다.”



《해설》



본경에 등장하는 망고 원림은, 찟따(citta) 장자가 지은 고대인도 마가다국(國)의 바라나시의 맛치까산다 숲에 있는 정사(精舍)입니다. 이 장자는 바라나시의 상인으로 오비구 가운데 한 분인 마하나마 장로를 뵙고 성스러운 가르침을 문사수(文思修)한 후 불환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대승경전인 유마경에 등장하는 유마거사의 모델로 추측되고 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 거사불교의 저울이고 표준이 되는 청신사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원음이 실린 초기경전에는 표상(nimitta)라는 술어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주석서에 따르면 그 뜻을 세 가지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① 신호, 표시, 징조, 조짐 등의 뜻(영어의 sign)이 그 하나이고, ② 외관, 흔적, 자국, 특성, 성질 등의 뜻(영어의 mark)이 그 둘이고, ③ 영상, 잔영, 표상 등의 뜻(영어의 image)이 그 셋입니다.

특히 세 번째의 표상은 삼매 수행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본삼매의 증득은 준비단계의 표상, 익힌 표상, 닮은 표상이라는 3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주석서 문헌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본경에서 말하는 표상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짝을 지어 생겨나는 해로운 심리현상[不善法]을 뜻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탐욕이 일어날 때’ 탐욕을 가졌다라고 인식하게 하는 표상을 만들면서 생겨납니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이와 같은 경로로 생겨납니다. 모든 종류의 인식은 대상이 드러내는 혹은 대상을 통해서 생기는 표상을 통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므로 수행자는 표상(表象)을 일으키는 조건 또는 원인을 지혜로써 탐구하고 조사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탐욕은 아름다운 표상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성냄은 성냄의 표상을 일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어리석음은 영원함[常]과 즐거움[樂]과 자아[我]에 대한 표상의 원인이 된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감(五感)을 통해 밖의 대상을 알게 됩니다. 찰나적으로 “즐겁다, 괴롭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세 가지 느낌이 일어남과 동시에 그 대상을 받아들어 개념작용을 일으키고 이름을 붙이는 작용이 함께 일어나는데, 이를 불교심리학에서는 인식의 무더기[想蘊]이라고 합니다. 느낌이 우리의 정서적인 심리현상의 단초가 되는 것이라면 인식은 우리의 지적인 심리현상의 받침대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습과 경험에 의해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때 아름다운 소리라고 압니다. 그러나 그 형색이나 소리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느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지 않게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름답다는 것은 대상과 상관없이 개개인의 마음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게 대경(對境)에 대해 마음에 잡도리할 때 형색의 표상, 소리의 표상, 냄새의 표상, 맛의 표상, 감촉의 표상, 법(물심 현상)의 표상이라는 거처에서 배회하고 묶이게 됩니다. 이런 표상과 함께 한 인식은 느낌과 더불어 사랑하고 미워하고 집착하고 염오하는 등의 정서적인 의도나 반응, 또는 반작용으로 발전해서 해로운 마음상태, 즉 번뇌와 오염원을 만들어 냅니다.

참되고 바른 수행자라면,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여인을 보고 그 인상이나 특상을 취해 미녀(美女)라는 표상을 취할 것이 아니라, ‘저건 오온(五蘊)이구나’라는 고상한 인식이 일어나고 그 인식을 굳건하게 하는 마음이 뿌리내려야만 표상 없는(animitta) 마음의 해탈, 즉 무상(無相)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세존의 가르침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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