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매 경 (SN 47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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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매 경 (SN 47 : 6)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6.04.0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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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비구들이여, 옛날에 새매가 급강하하여 메추리를 채어갔다. 그러자 메추리는 새매에 잡혀가면서 이와 같이 탄식했다.

“아! 참으로 우리는 이처럼 보호받지 못하는구나. 우리의 공덕은 이처럼 작구나. 참으로 우리의 행동영역이 아닌 남의 세력범위를 헤매고 다녔구나. 만일 우리가 자신의 고향동네인 우리의 행동영역에서 다녔더라면 이 새매는 싸움에서 나를 낚아채지는 못했을 터인데.”

“메추리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자신의 고향동네인 그대들의 행동영역인가?”

“새매여, 흙덩이로 덮여 있는 쟁기질한 저 들판이라오.”

2.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때 새매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과신하지만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으면서 메추리를 놓아주었다.

“메추리여, 그대는 가거라. 그러나 거기 가더라도 그대는 나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로다.”라고 하면서.

비구들이여, 그러자 메추리는 흙덩이로 덮여 있는 쟁기질한 들판으로 가서 큰 흙덩이 위로 올라가서 새매에게 “새매여, 이제 내게로 오시오. 새매여, 이제 내게로 오시오”라고 하면서 서 있었다.

3. 비구들이여, 그러자 새매는 두 날개를 접고 메추리에게 급강하하였다. 메추리는 “새매가 내 가까이 왔구나.”라고 알고는 그 흙덩이 안으로 들어 가 버렸고 새매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슴이 찢어져 버렸다.

4. 비구들이여, 자신의 행동영역이 아닌 남의 세력범위를 헤매고 다니는 자도 이와 같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의 행동영역이 아닌 남의 세력범위를 헤매고 다니지 말라. 자신의 행동영역이 아닌 남의 세력범위를 헤매고 다니는 자에게서 마라는 내려앉을 곳을 얻을 것이고 마라는 대상을 얻을 것이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자신의 행동영역이 아닌 남의 세력범위인가? 바로 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이다. 비구들이여,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영역에서 다녀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자신의 고향동네인 행동영역인가? 바로 네 가지 알아차림[四念處]의 확립이다.



【해설】

·본경에서 세존께서는 ‘새매와 메추리의 비유’를 통해 비구들이 고요한 숲속이나 고즈넉한 산사에 머물더라도 오욕(五慾)에 대한 생각을 끊지 못한다면 마라의 지배를 받아서 해탈로 나아갈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출가수행자들에겐 갈애가 동반자입니다.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어도 갈애와 사견(邪見)의 반죽에 물들어 있다면, 세존께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행할 수 없다고 설파하셨습니다.

·초기경전의 주석서에는 마라(Mara)는 욕계(欲界)의 최상천인 타화자재천에 머물면서 중생들이 욕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신이라고 말합니다. 비구들이 수행을 통해 예류과 이상의 성자가 되려고 할 때 해탈을 방해하여 감각적 쾌락인 오욕의 올가미에 걸리도록 유혹하는 악마를 상징하는 낱말입니다.

·출가와 재가, 또는 출세간과 세간의 차이는 외양(外樣)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결한 상태에 있는지, 아니면 탐(貪)진(瞋)치(痴)에 오염된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감(五感)에 부딪치는 색깔과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에서 즐거움을 맛보고 그 영향력에 굴복해버리고 마는 것이 중생들의 마음입니다. 대상이나 경계에 더 이상 좋아함이나 싫어함에 분별없이 집착하지 않도록 하는 정신훈련을 선정수행이라고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정념(正念, sati) 수행이야말로 지관겸수(止觀兼修), 정혜쌍수(定慧雙手)의 디딤돌이 된다고 강조하시면서 출가사문은 이를 수행의 고향동네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이 실린 경전이 「사념처경(M10)」 「대념처경(D22)」입니다.

·알아차림은 육근(六根), 육문(六門)에 대상이 나타나면 나타난 즉시 알아차리는 마음의 작용을 뜻합니다. 알아차림은 현장성(here)과 즉시성(now)이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림(sati)이 있으면 대상과 아는 마음 사이에 어떤 번뇌도 침투하지 못해 청정한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화두가 번뇌를 불태우는 불꽃이요 분별을 잘라내는 칼날로 작용하듯, 알아차림은 오염원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여섯 감관의 수문장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합니다.

·해탈은 홀연히, 단박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다생 겁을 통해 단계적, 점진적 수행을 통해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그 해탈의 이정표에 첫 걸음마가 팔정도의 일곱 번째인 ‘정념’입니다. 세존께서 강조하신 알아차림의 네 가지 대상은 몸[向身念], 느낌[受念], 마음[心隨觀], 법[法隨觀]입니다. 이 네 가지 대상에 대한 사띠(sati) 수행이 해탈에 이르는 유일한 독점적인 길이라고 세존께서 천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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