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야팍구나 경 (SN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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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야팍구나 경 (SN12:12)
  • /유현 김승석 엮음
  • 승인 2016.05.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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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1. [세존] “비구들이여, 이미 존재하는 중생들을 유지하게 하고 생겨나려는 중생들을 도와주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덩어리진 먹는 음식[段食]이 첫 번째요, 감각접촉[觸食]이 두 번째요, 마음의 의도[意思食]가 세 번째요, 알음알이[識食]가 네 번째이다.”



2. 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팍구나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알음알이의 음식을 먹습니까?”



3.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라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알음알이의 음식을 먹습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알음알이의 음식은 어떤 법의 조건이 됩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4.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알음알이의 음식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의 발생이라 불리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 그러한 정신·물질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六處]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있고,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다. … 태어남이 있다. …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해설】

우리 불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 되었다가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정말 미래에도 존재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미래에 어떠할까? 혹은 세상은 무엇인가?”를 고뇌하고 생각하여 헤아려 보았을 것입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팍구나 비구는 삿된 견해에 빠져 음식이 있다면 그 음식을 먹는 어떤 상주불변하는 자가 알음알이의 배후에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세존께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불교의 근본인 무아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알음알이[識]의 음식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을 일으키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주석서에 의하면 그 알음알이의 뜻을 재생연결식(pati-sandhi-citta)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씨앗에 비유되는 알음알이가 알음알이의 음식 역할을 하여 모태(자궁)에서 금생의 최초의 재생연결식이 되고 이것이 자양분이 되어 함께 일어나는 정신·물질[名色]을 생기게 한다는 것으로, 12연기의 구조 하에서 네 가지 음식은 조건들[食緣]이라는 뜻입니다.

<첫째> 덩어리진 먹는 음식은 육체적인 몸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특별한 조건이 됩니다. <둘째> 감각접촉의 음식은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세 가지 정신적 느낌들을 생기게 합니다. <셋째> 마음의 의도라는 음식은 업(kamma)을 통해서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의 존재를 생기게 합니다. <넷째> 알음알이의 음식은 재생연결에 관계된 정신·물질을 생기게 합니다. 그 정신·물질이라는 것은 ‘되어있는 것’, ‘생긴 것’, ‘존재하는 것’인데, 이것이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입니다. 세존이 내린 ‘인간에 대한 정의’가 이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인연, 즉 연기(緣起)는 사성제의 두 축(軸)인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방편이라고 이해하셔야 불교를 제대로 공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기 혹은 조건발생을 정확하게 알아야 삼세의 모든 의심이 극복되며 이것은 도와 과의 증득에도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됩니다.

이 몸뚱이, 즉 정신과 물질[五蘊]은 조건 지어진 것입니다. 조건 지어졌다는 것은 무엇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이 변하면 그에 따라 변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이 물질(육신)과 정신(마음과 마음작용)이 서로 엉켜 붙도록 윤회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무명과 갈애이고, 그로 인해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선업 또는 불선업을 짓게 되어 그 과보의 굴레에 따라 미래의 윤회에서 어느 한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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