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아프게 하면 나 자신도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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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아프게 하면 나 자신도 아픕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2.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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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동안거 해제를 맞은 불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 법문이 가슴을 따스하게 적셔온다. 스님은 여기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생각은 불교의 연기사상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탐욕과 이기심에 물든 현대인들에게 그와 같이 우리를 병들게 만드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질책하신다. 글로나마 스님의 따끔한 질책을 들으니 번뜩 정신을 차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스님의 진정성 깃든 호소가 여전히 울림이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설 잘 쇠셨습니까? 복도 많이 받으셨습니까? 복이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새해에 하고 싶은 인사도 많을 텐데 모두들“복 많이 받으십시오.”하고 인사하기 때문입니다. 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복을 받으라는 간절한 소망 자체가 좋습니다. 복은 인간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당신이 부처가 된 것은 복의 힘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경전에서 했습니다. “복의 힘으로써 나는 부처가 되었노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참선을 통해 한 소식하면 부처가 되는 줄 알았는데, 복을 많이 지어서 그 복의 힘으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과 에너지는 매 순간 소모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모할 것인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삶 자체가 복을 짓는 일이라면, 그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사는 일이 복을 감하고 복을 덜어 내는 일이라면, 그것은 잘못 사는 삶입니다. 하루를 살면서 그런 결산을 하십시오. 9시 텔레비전 뉴스를 보기 전에 내가 하루 동안 복을 짓고 살았는지 복을 덜고 살았는지 스스로 자기 삶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란 인사는 바꿔 말하면 “복 많이 지으십시오.”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아침 먹고 오셨지요? 빵을 드셨든 밥을 드셨든 그것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관계된 밥입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김치나 상추, 무 등의 종자가 어디서 들어오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그런 씨앗들을 만들지 않습니다. 모두 칠레산 종자입니다. 작년 가을, 시장에 씨앗을 사러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휴대전화 같은 것을 만드느라 다른 데엔 신경 쓸 틈이 없다고 합니다. 세계화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온 지구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무엇을 타고 이곳에 오셨습니까? 차는 많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집니다. 또 차는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유 공장에서 만들어진 휘발유나 경유를 주유소에서 넣어야 합니다. 또 절에 오는데 맨발로 올 수 있습니까? 신발을 신고 오는데, 이 신발은 누가 만듭니까? 그 가죽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내 한 몸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 세상의 많은 인연들이,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들이 우리의 만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못 생각을 하거나 함부로 행동하면 내 한 몸에 그치지 않고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잘 살면, 그 잘 사는 기운이 온 우주에 긍정적으로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잘못 살면, 그 사람을 위해 온 우주가 거들고 있는데, 나쁜 기운을 퍼트리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구조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뗄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홀로 독립된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안거 동안 생긴 일중에서 가장 놀랍고 두려웠던 일은 잘 아시다시피 쓰나미입니다. 이제껏 해일이나 지진 소식을 들은 적은 있지만, 한순간에 22만 명이 목숨을 잃는 참혹한 재난은 일찍이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것은 전 지구적인 재난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 무엇인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이런 화두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왜 이런 끔찍한 재난이 일어나는가 모든 인류의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재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세기를 대표하는 한 아메리카 인디언 영적 지도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물질적인 추구에만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곧 탐욕의 문제입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을 두고 한 말입니다. 모두가 물질 추구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이 그렇습니다. 보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갈증 상태입니다. 물속에 있으면서도 목말라하는 격입니다. 인간이 물질적인 추구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입니다. 다시 그 인디언 지도자의 말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 자신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웃의 사정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웃을 아프게 하면 나 자신도 아픕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면 나도 따라서 기쁩니다. 이것이 메아리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지구의 자식들입니다. 그 인디언 영적 지도자는 이와 같이 충고합니다. 
“날로 늘어만 가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인간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다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과 정신적인 추구에 있다.”
진리는 이토록 간단명료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덜 쓰고, 덜 버리면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끔찍한 재난이 언제 어디서 또다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이 지구는 단순한 흙이나 돌덩어리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지구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고 인간은 그 개체에 지나지 않습니다.‘구르는 천둥’이라는 인디언 영적 지도자는 또 이런 말을 합니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들이 대지를 잘못 대해 왔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장래에 큰 자연재해가 닥칠 것이다.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크게 뒤흔들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수십 년 전, 1950년대에 한 말입니다. 대지를 못살게 하는 물것들을 털어 낼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마치 짐승들이 물것들이 있으면 이내 털어내듯이, 지구에 서식하고 있는 물것들이 하도 못되게 구니까 지구가 살아남기 위해 크게 뒤흔들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전체와 개체의 상관관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가르침의 근본도 전체와 개체의 상관관계입니다.‘연기법緣起法’이 그것입니다.‘이것이 있으니까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도 소멸한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 사상입니다. 어떤 것도 그 자체만으로 홀로 존재하지는 않으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상호 간에 서로 의존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상호의존관계를 벗어나서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순간순간을 살아나가는 데 온 지구가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지으면서 산다면 그 협력은 더 빛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을 덜면서 잘못 산다면 온 지구의 힘이 소멸할 것입니다. 이런 상관관계 속에서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살고 못 사는 것, 수입이 많고 지위가 높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와 개체의 상관관계 속에서, 우리가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은 정월대보름, 겨울안거 해제일입니다. 해제란 맺은 것을 푼다는 뜻입니다. 또한 맺힌 것을 푸는 날이기도 합니다. 맺힌 것을 풀어야 홀가분해집니다. 얽힘에서 벗어나려면 맺음과 맺힘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묵은 해를 청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묵은 업도 청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업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선방에 다니며 매우 착실하게 정진하는 한 수행자가 화두 대신 수년 전 누군가 자신을 서운하게 했던 맺힌 감정을 품고 있다면, 그는 더 물을 것도 없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자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어떤 어두운 구석을 지니고 있거나 남에 대한 원망이나 서운한 생각을 지니고 산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입니다. 복 받은 삶이 아닙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물질적인 결핍이나 신체적인 결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늪에 갇혀 헤어날 줄 모르는데 있습니다.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순간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사는 것인데,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주저앉지 말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나가 버린 전생사 가지고 다시 되뇌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해지고, 현재와 미래가 소멸됩니다. 현재가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오늘 푸는 날을 맞이해서 모두 풀어버리십시오. 그래야 꽃 피고 새우는 화창한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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