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안 경 (SN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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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 경 (SN43:4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2.2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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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으로의 초대

《경전》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피안에 도달함[到彼岸]과 피안에 도달함에 이르는 길을 설하리라.”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피안에 도달함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안에 도달함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피안에 이르는 길인가? 몸에 대한 알아차림(kāyagata sati)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안에 도달함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피안에 도달함과 피안에 도달함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5.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 집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해설】

부처님께서 비유해서 말씀하신 이 언덕[此岸]이라 함은 중생들이 사는 조건 지어진, 만들어진, 형성된 세상이고, 저 언덕[彼岸]이라 함은 태어나지 않은, 만들어지지 않는, 연기되지 않는, 형성되지 않는 경지, 즉 열반을 뜻합니다.

부처님의 비유설법은 타(他)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낑수까 나무의 비유 경(SN35:245)』에서, 어떤 비구가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이 청정하게 됩니까?”라고 묻자 낑수까 나무의 비유를 통해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진 이 몸과 여섯 개의 대문{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에서 법의 일어남과 사라짐[法集卽滅法]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청정하게 된다고 설하셨습니다. 즉 아라한이 되는 방법-길은 이 몸에 대한 부정관 명상을 하고 또 여섯 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염원(탐욕, 성냄 등의 번뇌)을 단속하는 알아차림[sati, 정념(正念)]의 증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띠(sati)의 주요 기능은 여섯 감관(感官)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입니다. 마치 송아지를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대상에 굳게 묶어서 탐냄·성냄·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도록 마음[意, mano]을 지키고 챙기는 역할을 합니다.

색온(色蘊)은 몸의 무더기입니다. 몸은 관념으로서의 몸과 실재로서의 몸이 있습니다. 후자의 구성요소는 몸을 구성하는 32가지의 부분들입니다. 이 32가지가 몸을 완전하게 구성하는 모두 부분이라고 말 할 수 없지만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과 발톱, 이빨, 살, 힘줄, 뼈 등 32가지는 부처님께서 몸에 대한 부정관(不淨觀) 명상을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그리고 실재로서의 몸에는 지수화풍이란 4대의 요소가 있는데, 이러한 실재를 법(dhamma)이라고 합니다.

낑수까 나무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새싹이 나면 마치 타다 남은 그루터기처럼 보이고, 꽃이 피면 붉은 고깃덩이처럼 보이고, 열매가 열리면 껍질이 길게 늘어뜨려지고 꼬투리가 터진 것이 마치 아카시아 나무처럼 보인다고

초기경전의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정도론≫에서는 자칼이 낑수까 꽃을 보고 ‘저것이 고깃덩이로구나’라고 열망하듯 어리석은 이들은 이 몸을 자아라고 여기고 아끼고 꾸미고 보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해체하여 본다면 본래 이 몸은 300개가 넘는 뼈의 무더기인데 180개의 관절로 연결되어 있고, 900개의 힘줄로 묶여 있고, 900개의 살집이 붙어 있고, 축축한 살갗으로 싸여 있고, 표피로 덮어 있고,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구멍이 있고, 마치 기름단지처럼 아래위에서 불순물이 배출되고, 온갖 병균이 거주하는 곳이고 모든 병의 고향이고, 아물지 않은 고질적인 종기처럼 아홉 개의 구멍으로부터 부정한 것이 흘러내리는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는 수행이 바로 부정관(不淨관(觀)) 명상입니다.

/유현 김승석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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