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꽃 피는 해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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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 피는 해안동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3.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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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향수필

매화 피는 계절, 봄이다. 저마다 앞 다퉈 피는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지만 역시 그 중에 으뜸은 매화가 아닐 수 없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비로 3천 냥을 주자, 김홍도는 2천 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백 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한다. 

우리 동네에도 도처에 매화나무가 있었다. 특히 진산전 앞에는 매화나무가 다수 있어 꽃이 피면 참 보기가 좋았다. 그 외에도 무수천 계곡에도 만개한 매화나무가 있었다. 노리물 위쪽 밭 가운데도 제법 큰 매화나무가 있어서 봄이 되면 동네 이곳저곳에서 만발한 매화나무가 우리 동네를 수놓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 입구에도 아버지가 심어놓은 몇 십 년된 매화나무가 있어서 봄마다 꽃을 피울 때면 장관이었다. 

아스라한 기억들을 더듬으면 고생하고 어려웠던 생각도 다 추억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소를 보러 목장을 오가던 시절 배고픔도 흐르는 계곡물에 수건 한 장 덮어서 땅에 엎드려 마시면 허기가 달래지곤 했다. 처음에는 소똥이 빠져있고 개구리와 고치깔배기가 뛰어다니는 물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배가 고프면 어쩔 수 없이 먹게 된다. 그 때는 아버지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했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뵐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찾아뵈려고 어제는 아내와 함께 해안동 아버지 집을 찾았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해안동의 유래를 들을 수 있었다. 해안동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곳은 주루레라고 하셨다. 물을 따라와 살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몇 안 되는 집이 살기 시작했다. 그 다음 이동한 곳이 남짓당과 선낭당으로 옮겨 살았다. 그리고 탱자낭밭, 사상밭, 붉은밭을 거쳐서 지금의 서당이 있는 곳까지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인 사당터는 해안동이 오래된 학문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터라고 했다. 직샛또와 권자리왓을 잇는 길은 옛날 사령이 말 타고 다니던 길이었다. 옛날에는 이 길이 대한질이라고 불렀다. 이 길을 쭉 따라서 동쪽 방면으로 가면 현재 과학단지로 조성되는 아라동과 마주친다고 한다. 

그런데 조상들이 옮겨온 길을 보면 물이 있었고 그 길옆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어쩌면 해안동 터들은 매화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이 되니 매화 향기에 취하고 싶어 동리 옛길을 더듬어 걸어본다.

/김승범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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