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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이치를 과학의 원리로 본다면해덕스님의 마음법문

수행자와 불자들은 한 마음을 깨닫기 위하여 기도, 참선, 염불, 간경 등 쉼 없는 알음알이 속에서 공부를 계속 지어 나간다.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는 물체나 물건들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은 마음인 자성은 수많은 생각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꺼낼 수도 없다. 그리고 육신 안에서 항상 머물며 함께 하고 생각하면서 움직이며 먹고, 자고 행동과 더불어 모든 것을 해내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오래된 중생의 습으로는 마음이 몸뚱이를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없고 오로지 수행과 정진으로써 깨달음을 얻기 까지는 활용하고 활용되어가는 그 묘용과 묘법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생을 공부하며 육신과 온 마음과 정성으로 수행하는 납자들과 불자들은 한 마음 보이지 않는 이 물건이 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캄캄한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매는 간절함으로 오로지 어둠속을 빠져 나갈 출구 길을 찾으려  방황하며 공부하게 된다.

마음이란 정작 알고 나면 자유로움 속에서 여유를 가지며 살아 갈수 있지만 만약 느끼지 못한다면 속박 속에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은산 철벽처럼 꼭 막혀서 답답하고 도저히 올라 갈수 없는 정상의 산꼭대기와도 같이 느끼게 된다.

우리가 매일 쉼 없이 닦고 공부하는 이유는 일생일대사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고통과 굴레를 벗어나는 길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매일 보고 쓰는 텔레비전 제품이 있다. 그 안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 다 보게 되면 앞은 모니터지만 속내부에는 무수한 부품들이 복잡하게 되어 있고 부품들이 자기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화면을 켜고 끄고 항상 영상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텔레비전이 고장 나서 화면을 볼 수가 없을 때  비전문가는 아무리 화면을 들여다보고 부품들을 꿰맞추어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 그러나 전문가인 직원을 불러서 고친다면 모든 것을 뜯어내면서 어느 한 부분에 부품이 잘못 되서 고장 난 것을 찾게 되면 금세 다시 영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전체를 안다라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인데 결국은 과학의 이치와 불법의 이치는 같은 원리로 보고 같이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미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은 지혜의 법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며 또한 과학의  원리와 법의 이치는 자연과 함께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육안만을 인정하며 불법을 모르는 범부들에게는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주어도 잘 이해가 뒤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지식으로서가 아닌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며 또한 눈 뜬 장님이 되어선 아니 될 것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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