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 견제와 불교문화 중흥의 조화가 ‘제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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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견제와 불교문화 중흥의 조화가 ‘제 몫’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6.08.2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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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호 뗏목을 건넌 제주불교신문의 1002호 주인공 김태석 제주도의회 길상회장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사명으로 창간된 제주불교신문이 2016년 8월 5일로 지령 1000호를 돌파하는 감격을 맞았습니다. 진리의 빛을 전하겠다는 전법의 원력을 세웠던 제주불교신문이 9월 12일자 창간 27주년을 맞아 그 길을 묻고 길을 열고 길을 닦으며 다시금 달음질쳐 나아가려 합니다.  이에 도민들 대의기구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김태석 길상회 회장님을 지면에 모시고 제주의 미래를 열어보고자 합니다. 대담 : 김군호 영업관리이사 <편집자 주>

 

김태석 의원은“지극했던 어머니에 대한 불심 덕분에 지금의 제3대 길상회장을 맡은 것 같다”며 “불교의 사회적 역할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 제주도의회 길상회 출범부터 시작해 어느덧 3대 회장의 소임을 맡으셨다. 어깨가 무거울 텐데 그 소감과 도내 불자들에게 다짐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초대 윤두호, 2대 신관홍 회장님의 뒤를 이어 맡게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두 분 회장님의 업적을 뛰어 넘어야겠다는 각오를 동시에 갖는다. 불자의원으로서 도정에 대한 견제와 불교문화 중흥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겠다,

 

2. 의원님은 제주도의회에서 제주불교계의 상징과도 같다. 길상회를 소개하며 불교의 권익과 문화재 보전 및 활용 방안에 대해 말을 했는데 이에 대한 추진 방향은?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만 해도 제주는 당오백, 절오백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제주는 전통문화와 불교문화의 보고였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 숭유억불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조선의 정책은 그야말로 불교말살 정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이형상 목사의 불교유적 전소는 제주불교의 맥을 끊어놓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전통문화로서의 불교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보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특히 부처님의 제자인 발타라존자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존자암을 비롯해 고려시대에 창건된 3대 사찰인 법화사지, 원당사지, 수정사지는 찬란했던 제주불교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외도의 수정사지는 도시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불교문화에 대한 무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불자의원으로서 몫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자본논리에 묻힌 대표적인 사건이라 보여진다. 저는 원도심 재생사업의 T/F팀에도 꼭 향토사학자가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무근성 일대가 탐라의 수도라면 그에 따르는 역사와 문화적인 작업들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3. 길상회는 그동안 정기법회를 봉행하며 불심과 회원 간의 화합을 다진 것으로 알고 있다. 20명 회원들의 불심과 화합을 다질 계획이 있다면?

길상회 회원들과의 불심과 회원 간의 단합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회원들과의 단합된 힘으로 멸실된 불교문화의 중흥과 근대 들어서 관음사 창건이후 다시금 발생하게 되는 제주불교를 다시한번 활짝 꽃피우기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리고 추진해왔던 정기법회를 지속적으로 봉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도내 종단과 종파를 초월, 스님들을 찾아뵈면서 마음의 힐링을 찾아왔다. 길상회원들도 다양한 현안문제를 다루다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정기법회가 되도록 하겠다.

그리고 장기 프로젝트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제 화두다. 타 종교의 경우 사회문제에 적극적이다. 물론 성인의 말씀을 토대로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목소리에 주안점을 둘 필요는 있다. 불교계도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부처님의 지혜로 풀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연말에 길상회원은 물론 도내 사부대중을 제주도의회에 초청, 유명 동국대 교수 등의 강사를 모시고 불자들의 견문을 넓히고, 제주불교 발전을 위해 서로의 생각을 맞대보는 시간도 마련하고 싶다.

특히 불살생의 계율이 불자들의 첫 덕목인 만큼 환경문제의 경우 불교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 역시 롯데나 부영 등 대기업들이 중산간 개발로 환경 파괴를 바로잡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환경문제만큼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앞장선다면 그 파급력을 클 것으로 내다보인다. 

 

4. 이번 하반기 의회에서 운영위원장이란 막중한 역할도 맡으셨다. 도의회 운영은 물론 원 도정과의 조율 등 운영위원장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계신지?
운영위원장은 의회 내에서 의원들 간의 의견을 존중하고 도와 의회간의 메신저로서 역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특히 제주도의회 의정 사상 최초로 의장과 운영위원장이 정당을 달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정당간의 소통과 화합을 하라는 도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 소임을 다하려고 한다.

 

5. 위원장님, 개인적으로는 도내 현안 중에 어떤 부분을 최대 화두로 갖고 계신지요?

관광객과 이주민의 증가는 제주도민에게는 기회이자 동시에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교통, 주택, 쓰레기 문제는 제주의 3난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도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로서 사람, 상품,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 되어져야 한다,

문호를 개방하면서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6. 어릴 적부터 인연이 닿은 사찰과 부모님의 불심 그리고 의장님이 생각하는 불교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고향은 한경면 신창리다. 하지만 제가 7살 무렵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면서 모든 살림을 떠맡으신 어머니는 우리 7남매의 교육 때문에 고향을 뒤로하고 제주시로 이사했다. 자식들을 위한 어머니의 불심은 그야말로 지극했다. 어머니는 초하루나 보름이면 새벽 4시에 저를 깨우고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자리한 천왕사로 데리고 갔었다. 그 당시는 부처님을 안다기보다 새벽에 절에 다녀오면 당시 용돈으로 10원을 주면 눈깔사탕을 사먹는 재미에 푹 빠졌던 것 같다. 그 맛에 어머님과 같이 천왕사를 다녔던 추억은 지금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 2000년 대 중반에는 천왕사거사림회장도 맡았고, 나름대로 어릴적 어머님에 대한 사랑의 빚을 갚으려던 노력이 지금의 길상회장까지 맡게 된 인연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제가 27살이 되던 해, 어머니도 아미타부처님 품안으로 가시게 된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타계로 젊은 시절 방황하게 됐고, 그때 원명선원에서 했던 ‘선 삼매체험’을 우연찮게 경험하게 된다.

그 당시 젊은 참여자가 “여기 오기까지는 밤하늘의 별들이 흐릿하게 보였는데 오늘 회향날은 별들이 반짝인다”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그 길이 달라보이듯 그 길로 나의 방황은 끝이 났고, 제2의 삶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지금의 삶도 불교에 대한 빚이라 생각한다. 

그 빚을 현세에 갚아야 되지 않느냐는 책임, 이것의 불심의 근본을 이뤄야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동시에 국가와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고민, 이것이 불자들이 나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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