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만든 ‘하안거’때 무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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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만든 ‘하안거’때 무얼 했나?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7.05.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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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들이 안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해가 바뀌고 새로운 다짐을 했던 시간도 그냥저냥 흘러가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의미하게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정유년 하안거를 맞아 참회하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시간으로써 안거의 의미를 새기면서, 안거는 어떤 의미와 역사를 가졌는지를 살펴보겠다. <편집자 주>

 

외출을 삼가고 
스승의 가르침 들으며
수행에 매진해야… 

 

제주도내에서 유일하게 스님들이 참선수행 수 있는 선원인 남국선원(선원장 혜국 스님·주지 성묵 스님)에서 수좌 스님들이 자성을 찾아 참선하면서 정진하는 모습. (사진=이병철 기자)

부처님오신날이 지나고 1주일 뒤인 지난 10일 전국 사찰과 선원에서는 일제히 하안거를 시작해 석달간 산문 출입을 삼가고 기도와 수행에 힘써 나갈 예정이다. 이러한 안거가 시작되니 불자들의 마음 역시 안거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바뀌면서 마음공부에 동참하려는 분위기가 일고 있으니 안거의 의미가 그만큼 깊다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안거라는 것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부처님의 성도 후 많은 사람들의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출감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승가가 이뤄지면서 많은 규정들이 생겨난 가운데 안거도 승가의 한 덕목으로 자리 잡혔다. 

안거는 삼 개월이나 사 개월 동안 비가 지속되는 우기에 한 곳에 정착해 생활하며 외출과 유행(流行)을 삼가는 안거의 풍습은 당시에 인도 대부분이 지역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교단들 역시 이 안거의 기간 동안에는 역시 초목을 밟거나 동물에게 피해를 주기 쉬운 이 시기에는 일정한 곳에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의 성도 후 라자가하를 중심으로 교단이 성립되던 무렵 비구들은 우기에 구애되지 않고 포교를 위해 분주히 여러 곳을 다녔으나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부처님께서도 안거 제도를 마련하셨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비구 스님들이 한 곳에 거주하며, 질병과 재난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하는 일이 없도록 금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그 기간을 스승과 장로 스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수행에 매진하는 시기로 삼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기가 끝날 무렵이면 다음 포교 활동을 위해 신자들로부터 옷감을 받아 가사를 만들고, 발우가 깨어졌으면 새 발우를 마련하였다. 안거 마지막 날에는 안거를 함께한 이들이 모두 모여 그동안 보고 듣고 의심한 허물들에 대해 토로하고 참회라는 자자(自恣)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오랜 전통의 안거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불교가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방이 있는 백양사 자료에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 선원은 통일신라 말에 선종(禪宗)이 전래된 이후 설치되어, 승려양성에 중요한 수행기관으로서 큰 구실을 하여 왔으며 사찰 내에서 선당(禪堂), 선방(禪房), 좌선당(坐禪堂) 이라고도 하였다. 당시에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에는 좌선을 하거나 교리를 연구하게 되어 있다. 그 뒤에 부파 불교 및 중국 불교에는 불교 교단이 일정한 사원과 토지 등을 소지하고 그 재산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탁발은 꼭 하지 않아도 되었고, 연중 사원에 상주하며 선(禪)과 경론(經論) 등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음력 10월 16일부터 이듬해 정월 15일까지 한 차례 더 동안거(冬安居)를 실시하게 되었다. 

특히 이 안거의 전통을 이은 선원에서는 불교의 진리를 좌선을 통해서 내관(內觀)하고 스스로 살펴 자기의 심성을 철견(徹見)함으로써 자증삼매(自證三昧)의 묘한 경지를 체달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며 중생제도를 하는데 교육목표를 둠으로써 불교의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더했다. 

더욱이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사를 세우고 정혜쌍수(定慧雙修)의 학설을 주장한 이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 강원은 선원의 예비문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되어 강원 수료자가 선원에 들어가 평생수행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선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강원의 사교과(四敎科)와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여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20세 이상이 된 자에게 부여되었다. 

선원은 방장(方丈) 또는 조실(祖室)의 지휘 아래 운영되었는데, 그 아래 책임자로서 선주(禪主)를 둔다. 이 선주는 선덕(禪德) 또는 수좌(首座)라고도 하며, 방장이 겸하는 경우도 있다. 선주 밑에는 내호법반(內護法班), 외호법반(外護法班), 특수조직을 두었다. 이들 중 중요한 직책의 임무를 간추려보면 선주는 정법을 거양(擧揚)하며 선원의 모든 일을 지휘한다. 수좌는 선주를 보좌하며 참선과 염불을 지도하며 선주가 출타할 때에는 이를 대리한다. 선원에서의 하루 수행시간은 8시간 이상으로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수행방법은 ‘자선자수(自禪自修), 자력자식(自力自食)’을 기본으로 하며, 안거는 좌선을 위주로 하되 선리를 연구하고 대소승률(大小乘律)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한, 선원수행의 습독서로서는 <금강경>, <능엄경>, <선요>, <절요>, <도서>, <서장>, <치문>, <자경문>, <초심>, <염송> 등이 채택되었고, 권장 경전으로서는 <화엄경>, <원각경>, <법화경>, <기신론> 등을 배우기도 했다. 

또한, 조실의 설법 중에는 일체의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의심이 있을 때는 설법이 끝난 뒤 방장실에 들어가 질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선원의 청규(淸規)는 엄하여 파계(破戒),사행(邪行) 등 모든 폐습이 일체 엄금된다. 

안거기간 중에는 일체 동구(洞口)에 나갈 수 없으며, 오직 부모나 스승의 중병이나 사망 시, 그 밖의 부득이한 일이 있을 때만 조실의 허락을 얻어 외출 할 수 있다. 

만약 선원 자체에서 정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3차례 권유하고 이에 불응하면 퇴방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결제의 시작 7일, 해제 직전의 7일, 결제와 해제의 중간인 반산림(半山林) 때의 7일 동안은 전혀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며, 매월 1일과 15일에는 조실이 상당(上堂)하여 설법을 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전통은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 준수되고 있다. 단지 옛날처럼 강원의 대교과를 마친 뒤 선원에 들어가는 전통은 사라져 강원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선원에 들어가서 20하안거를 수행하고 법랍이 20년 이상 되어야만 얻을 수 있던 대선사(大禪師), 대교사(大敎師)의 당호(堂號)나 10년의 법랍이 있어야만 될 수 있는 주지의 자격은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의 전통은 공부하는 수행승에 의하여 이어지고 있으며 그 정진의 기강이나 노력, 시간 등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참다운 불교수행처가 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의 선원이기도 하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안거의 그것을 지켜나가는 선원이 참으로 수승하다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위에 언급한 자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여기서 불자들이 선원에 공양하고 수좌 스님들에게 삼배를 올리는 것이 결국 넘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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