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빼놓고 어디서 구하려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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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빼놓고 어디서 구하려고 하십니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5.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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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스님 사자후

이번 주 사자후는 한마음선원을 세우신 대행 스님의 감로법문을 실었다. 대행 스님은 우리의 몸뚱이는 등이 되고 우리의 마음 중심은 촛대가 되고 우리의 마음, 생각 내는 것은 촛불이라면서 이러한 인등이 항상 밝혀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나의 중심이 없이 여기저기 끌려 다니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편집자 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생활에 직결된 불법 공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설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이름에 끄달려서는 절대 안 되며, 전체가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와 그 하나에 의해 전체 나투면서 시공이 따로 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각자 나로부터 있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우리는 미생물부터 거쳐서 그 뼈저린 아픔을 견디고 모습을 바꿔가면서 진화됐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어떠한 사생이든지 다, 부모와 자식 형제가 있는데 자식이 부모가 되고 부모가 자식이 되면서 윤회에 말리다가 그 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과거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현재에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래에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생각을 잘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보면 모두 타의에서 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빼놓고 어디서 구하려고 하십니까? 나로부터 이 세상이 생겼고 나로부터 가정이 생겼고 나로부터 상대가 생겼지 나 빼놓고 무엇이 있어서 종교라고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나 빼놓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나라고 그런다고 나인 줄만 알지 마시고, 나만이 아니라 각자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나’말입니다. 

나! 나! 그래서 부처님께서“나의 육신을 믿지 말고 너의 마음을 믿고 깨달아서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라. 그렇게 된다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일체 만물만생이 다 둘이 아니니라. 그 도리를 알지어다.”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타력 신앙으로써, 기복으로써 나가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돈을 갖다 주고 이름표를 붙여 놓고 전기로 백 일 인등을 켠다고 하는데 그건 진짜 인등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진리가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지금 찰나찰나 찰나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걸 아셔야 하고 우리 인생이 백 년을 산다 하더라도 한 철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내 몸이 없다면 부딪침도 없고 상대가 없어서 일체를 깨닫지 못하고 지혜를 넓히지 못하고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사람이 종교를 믿고 알려고 하는 것은 지혜를 넓혀 언제나 밝은 삶의 보람을 느끼기 위한 것이지 우상 숭배나 하고 밥이나 내려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스님이든 스님이 아니든 그걸 막론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각자 나를 발견해서 자유자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신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이 미신의 행위를 하니까 미신이 있는 거지 미신의 행위를 하지 않는데 어떻게 미신이 있겠습니까? 오늘이 없으면 내일이 없듯이, 오늘 따귀를 맞았으면 내일 또 따귀를 때리게 되듯이 이러한 상대성 원리가 바로 하나로 뭉쳐서 돌아간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지혜를 넓혀서 파악할 수 있다면, 아마 돈을 드리면서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실 거예요. 

보세요! 내가 아까 말했듯이 인등을 켠다는 것은, 여러분의 몸뚱이는 등이 되고 여러분의 마음 중심은 촛대가 되고 바로 여러분의 마음, 생각 내는 것은 촛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촛불을 항상 켜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몰라요. 그렇다고 해서 불당佛堂에 가지 말라는 것도 아니요, 어디를 가지 말라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배우려면 올바로 배워서 물러서지 말라는 뜻이죠. 우리가 이 육신을 가지고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죽는다는 것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가을에 나뭇잎이 가랑잎이 돼서 떨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그 육신을 벗고 갈 때에 돈이 따라가겠습니까? 형제가 따라가겠습니까? 부모가 따라가겠습니까? 자식이 따라가겠습니까? 돈더러 가자고 그래도 안 갑니다.‘네가 좋아서 날 따라다녔지 내가 좋아서 너를 따라다닌 건 아니니까.’하고 안 따라가더랍니다. 부모한테 가자고 해도, 또 자식한테 가자고 해도 같이 가 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도리를 명백히 아셔야 하며 마음의 촛불, 즉 인등이 항상 밝혀져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 백일 동안 켠다고 한다면 백 일 동안만 불이 켜져 있고 백 일 동안만 진리가 돌아가고 그럽니까? 생각들 해 보세요. 일 초도 쉬지 않고 우리는 생활을 하고 있고 또 찰나찰나 마음이 바뀌고 화해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를 만날 때 자동적으로 자식이 돼서 말도 행도 뜻도 그렇게 돌아가고, 또 아내가 오면 아내가 오는 대로 자동적으로 남편이 돼서 금방 “여보!”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자유로운 힘이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다는 거죠. 오신통이 말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역할을 할 때가 여러분이겠습니까? 어떤 사람 만날 때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공했느니라. 색이 즉 공이요 공이 즉 색이니라. 너희들은 둘로 보지 마라. 모두가 한 찰나 한 찰나 돌아가는 그 이치를 알면 공한 도리를 알 수 있느니라.’그러셨습니다. 만약에 나로부터 알 수 있다면, 여러분 육신 속에 업식이 한데 뭉쳐져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움죽거리게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제일 먼저 설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 뭉쳐 있는 고덩어리가 어디서 온 것인지만 알면 바로 즉시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과거에 걸어온 길을 짊어지고 나와서 그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악업이든 선업이든 그 업식 자체가 합쳐진 것을‘나’하나가 짊어지고 들어간 거죠. 아버지의 뼈를 빌리고 어머니의 살일 빌려서 그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바로 자기의 업식을 짊어지고 그렇게 여러분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이치로 따지고 볼 때 집만 얻어 가지고 여러분이 그 안에서 살림을 하는 거죠. 이것을 절실하게 생각하고 여기에서 공부를 하신다면 이 세상에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여러분의 보배를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또 인등도 인등이지만, 부처님께서 과거에 49년 동안 말씀해 놓으신 경전을 볼 때 “수많은 사생의 마음을 물방울이라고 비유한다면, 바다에 전부 들어가도 두드러지지 않고 다 퍼내도 줄지 않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물 컵에 여러분의 마음 한 방울, 물 한 방울 넣어 보십시오. 컵의 물이지 한 방울의 물이 따로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마음자리는 어느 것도 붙지 않는 자리입니다. 체가 없으니 붙을 자리가 없죠. 

더 말한다면, 부처님의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면서 성장하는 마음, 이런 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마음, 바로 내가 대신 죽어 줄 수도 있는 마음, 그 자리에는 어느 것도 붙지 않습니다. 이유가 없고요. 자식이 물에 빠지면 부모는 그냥 들어가서 건지거든요. 자기 죽는 줄 몰라요. 거기 무슨 이유가 붙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와 같이 자식이 빠졌을 때 뛰어드는 그 순간의 마음, 자식을 생각하는 어버이의 그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과 둘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래서 조상의 마음이 따로 있고 부처님의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마음은 두루 하시고, 육의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두루 하지 못하는 차이는 있지만 내 걸 다 버려서라도 너를 살리겠다는 그 마음은, 잘 돼라 하는 그 마음은 부처님 마음과 같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큰 그릇이든 작은 그릇이든 더 큰 바다든, 한 그릇은 한 그릇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작은 그릇에 물 한 그릇 떠도 한 그릇, 큰 그릇에 물 한 그릇 떠도 한 그릇, 더 큰 그릇에 물 한 그릇을 떠도 한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의 한 그릇이라고 해서 한 그릇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가 셋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이 하나가 돼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불법을 배운다고 해서 부모를 소홀히 하고 자식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과 직결돼 있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 생활이 천체물리학이기도 하죠. 과학이기도 하구요. 그것이 바로 사실인 걸요. 우리가 생각한 것이 바깥으로 나와서 중용을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거지, 이론으로 백 마디 천 마디 만 마디를 알아도 목마른데 물 한 그릇 먹을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시지 않겠죠. 부적이나 가지고 다니면서 베갯속에 넣고 문간에나 붙이고 이렇하시지 않으실 거고요. 붙였다 하더라도 물 한 그릇 떠 놓고 소하세요. 부적이 여러분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이 흔들리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삼재가 들어서 못 살고 또 어느 방향은 손이 있어서 이사를 못 가고, 이런 것도 남의 말에 휘둘려서 당신네들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아! 이럭하면 우리가 좋지 않을 텐데….’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중심이 없으니까 마음이 흔들려서 그것을 또 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권리를 가졌다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 참 가난해서 죽겠고 병고에 휘달려서 죽겠고…, 이러니 하루하루 24시간 사는 동안이나 날짜 등에 얽매이는 고통까지도 짊어져야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대답들 좀 해 보세요. 여러분도 이 세상에 나왔을 땐 인간의 권리를 가졌겠죠. 그러니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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