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면 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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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 절을 합니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6.2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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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행복을 위한 소도리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찰에 가면 부처님게 절을 올립니다. 그래서 사찰에 가면 절을 올린다 해서“절”이라 한다고 합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이유는 경배의 대상으로 그 분에게 존경한다는 의미를 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 절을 한다 해서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절을 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먼저 3배를 시작으로 53배가 있으며, 다음으로는 108배가 있고, 그 다음은 1,000배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3,000배가 있습니다.

3배를 드리는 것은 삼보(3보 : 佛·法·僧)에 귀의하여 貪心·瞋心·癡心의 삼독심(三毒心)을 끊고 삼학(三學 : 戒·定·慧)을 닦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고, 53배는 참회 53佛에 대한 경배이며, 1천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3천배는 과거·현재·미래의 3대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인 것입니다.

절에 가면 많이들 108배를 하는데 왜 108배를 하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번뇌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번뇌의 숫자가 108가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생들의 근본번뇌를 108번뇌라 합니다. 

이 108번뇌를 자세히 설명하면 번뇌는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서로 만날 때 생겨나는 것인데, 다시 말해 눈(眼)·귀(耳)·코(卑)·혀(舌)·신(身)·뜻(意)의 육근(六根)이 색깔(色)·소리(聲)·향기(香)·맛(味)·감촉(燭)·법(法)의 육진(六塵)을 만났을 때 좋다(好)·나쁘다(惡)·좋지도 싫지도 않다(平等)는 세 가지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합니다.

그리고 다시 좋은 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樂受],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고[苦受],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拾受]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6근과 6진이 부딪칠때 좋고[好]·나쁘고[惡]·평등하고[平等]·괴롭고[苦]·즐겁고[樂]·버리고[拾], 이 여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기 때문에 6x6=36 즉 서른여섯 번뇌가 생겨나게된 것입니다.

6x6=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면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즉 6x6x3=108개가 되는 것입니다.

108번뇌란 우리들의 흩어진 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번뇌를 따라 밖으로 뿔뿔이 흩어질 때는 무능에 빠지고 끝없는 생사의 유전 속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번뇌 속으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삼매는 다시 살아나고 원래의 무한 능력이 우리에게서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108배로 108번뇌를 끊는다”라는 말을 많이들 했지요.

그러나 108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번뇌는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고, 108배의 절은 번뇌를 끊는 의식이 아니라 깊은 삼매(三昧)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절은 곧 하심(下心)이다“라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릇은 기울어져야 속에 찬 것이 비워지는 것처럼 몸을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갖추면 야만심, 자존심, 이기심, 선입관념, 고정관념을 쏟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참회의 구체적 행동이기도 합니다. 연꽃이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듯 무지와 어둠에 쌓인 중생의 마음을 닦아 연꽃처럼 부처가 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불심(佛心)인 것입니다.

/금륜 문경언 (본지 객원기자·제주어보존회 몬울엉봉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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