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과 피안 가르는 다리를 건너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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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과 피안 가르는 다리를 건너서 가는 길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7.07.12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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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인욕의 길 두 번째 이야기는 산록도로를 지나 1100도로 초입에서 만난 충혼각과 일붕동산에 대한 이야기다. 설봉 스님이 세운 충혼각에서는 전쟁으로 아깝게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자비심 가득한 부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일붕동산에서는 서경보 스님을 따르는 후학들의 예경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편집자 주>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설봉 스님이 세운 충혼각은 52년째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도를 조석으로 드리고 있다.

산록도로를 벗어나 다시 1100도로로 접어드니 이제 순례객이 목표한 지점인 한라산 영실과 더욱 가까워졌다. 

1100도로로 들어서면 머잖아 만나는 곳이 충혼묘지를 향하는 길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묘지가 있는 이곳으로 들어서기 전에 왼쪽으로는 일붕동산이 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충혼각이 보인다. 

일붕동산은 서경보 스님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추모비를 비롯해 서경보 스님의 동상이 서 있는 곳이다. 제주출신 스님으로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학승으로 이름을 떨치며 세계를 누비며 한국불교를 알렸던 스님의 발자취를 좇던 후학들이 한라산 중턱에 스님을 기리기 위한 터를 다졌으니 그 그리움이 사뭇 깊다할 수 있다. 

맞은편 충혼각은 사라봉에 있던 충혼각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써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설봉 스님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절로 그 미망인과 후손들이 여전히 이곳에 와서 돌아가신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현재는 현명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조석으로 부처님께 예불하고 있다. 

 

일붕 서경보 스님의 빛나는 업적을 추모하고자 후학들이 만든 일붕동산에는 서경보 스님을 기리는 추모비와 동상이 서 있다.

충혼각은 들어가는 입구는 마치 차안과 피안을 가르듯 작은 다리 하나가 놓여있고, 다리 옆으로는 오래된 계곡이 있어서 자연의 수려함을 유지하고 있다. 윤오월의 햇볕이 타들어가듯 바삭하게 메말라 있는 흙을 밟고 다시 작은 다리를 건너가는 이곳은 마치 삶과 죽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듯 순례객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일붕동산을 향하는 길

제주에서는 4·3의 광풍이 멎기도 전에 다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에 휘말려 또다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을 치러야했다. 식민지의 비극이 끝나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기도 전에 이데올로기의 싸움에 휘말리고, 다시 두 동강난 나라는 전쟁을 치르면서 한겨레가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과연 사는 것이 무엇이고 죽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나빴던 시절. 그 시절이 이제는 반세기가 훌쩍 지나 옛일처럼 아득하기만 하니 그 슬픔과 희생을 누가 대신 위로할 수 있겠는가.

충혼각으로 나 있는 다리가 보이는 곳에는 햇볕을 비껴간 그늘을 드리워 순례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니 절을 참배하는 순례객의 마음 또한 무겁고 죄송스러울 수밖에는 없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삶이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자각하게 되니 말이다. 

 

충혼각 대웅전에 봉안된 수많은 위패가 참배객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수많은 위패들이 모셔져 있는 충혼각 법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호국사상과 충효교육을 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참배하러 다녀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바쁜 일상에 취해 사람들의 발길이 오히려 뜸해지니 그 적막함으로 인해 참배객을 반기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릴 뿐이다. 

주지 현명 스님은“세상의 흐름 따라 절집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앞으로는 가족들이 함께 법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고 싶다”고 전했다. 

현명 스님은 또“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삶을 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을 얽매임으로 생각하면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라면서“강요가 아니라 젊은이들 스스로 이곳으로 와서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순례객 역시 우리의 인생길이 삶과 죽음을 함께 배워야 하는 그러한 어려운 길이란 걸 인식하기에 이곳 충혼각에서 인생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찾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서경보 스님과 설봉 스님…….  우리를 이끌고 있는 선지식들은 어려운 시절에도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 부처님 마음 하나로 불사를 하고 기도를 하고 수행을 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힘든 일들을 해낼 수 있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이렇듯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길을 걸었으니, 순례객의 마음 역시 더욱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천왕사로 이어진 삼나무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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