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과 인과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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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과 인과응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8.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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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덕스님의 마음법문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니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쨍쨍 내리쬔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런 무더위의 일상생활속에서 하루의 짧은 시간을 보내며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있다. 각기 다른 직업과 얼굴이 다르고 생각도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잠시 스치며 만나는 인연도 있지만 짧지만 정말 소중하며 고마운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다. 만일 지금 전생에 지었던 악업의 인연을 우연히 만났다면 그것은 지독한 만남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갚고 갚아야 할 전생의 빚이다. 과거의 빚이 서로에게 남겨진 상태에서 지금 필연으로 만난 것이다.
그런데 먼 과거 생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만난 악한 인연은 주고받아야 할 일을 알지 못한다. 곪은 상처에 또 새로운 상처를 만들어 내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전생의 일들을 알 수 있다. 참회하며 ‘공(空)’과 ‘무(無)’로 되돌릴 수 있다. 
“업을 녹일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원결을 만들어 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수행과 공부를 통하여 “나를 안다는 일”은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밝은 지혜를 얻는 일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는 자신이 지은 것에 대한 선업과 악업의 과보는 반드시 받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주변의 모든 일들은 필연이며, 숙명적으로 온 것으로 받아야 한다. 과보는 때가 되어 온다. 또 미래에도 인연에 대해 지은 과보는 기다리고 있다. 깨닫지 못한 범부들은 무명에 가려서 살아가며, 먹고 사는 일에만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닦지 않기에 스스로 지은 과거 전생을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불법은‘근본자리인 나를 아는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린 자리에 싹이 자라고 수확을 하듯이 그 씨앗은 과거의 시작이며 현재의 결과물이다.
복과 업은 지은 만큼 돌아갔다 다시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악업을 짓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인과응보를 부정하고 전생과 윤회를 믿지 않는 사람은 공덕과 복을 짓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는다. 그러나 불법을 알고 수행하는 사람은 자비의 보살행을 하며 선업을 짓고 공덕을 쌓으며 부처로서의 길을 당당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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