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 갖춘 것을 잘 쓰는 지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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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갖춘 것을 잘 쓰는 지혜의 길”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7.09.11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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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성지순례길> 제주전통사찰 고산 월성사

가을 여백

-고산 월성사에 붙임-

 

김희정 시인

 

     하늘이 둥글고

 

     절집 마당이 둥글고

 

     부처님 얼굴이 둥글고

 

     스님 얼굴이 둥글고

 

     참배객 등이 둥글고

 

     담 너머 호박도 둥글둥글

 

     둥글어지고

 

제주전통사찰로 지정된 고산 월성사 대웅전 모습.
현대식으로 시설이 갖춰진 월성사 장례식장의 모습.

여름 내내 열대야로 고생을 했는데 이제 밤낮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하늘을 잠시 쳐다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억새꽃도 조금씩 올라오면서 도심을 빠져나가 시 외곽으로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계절이다.

멀리 서쪽 바닷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달리다 보면 너른 밭들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수월봉과 고산의 너른 밭을 바라보면서 가을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처님의 원만한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도량, 고산 월성사가 있어 더욱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여기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에 너무 바쁘다보니 절에 올 시간이 참 부족해요. 그래, 와서 도와달라는 말도 못하고 나도 새벽예불 마치면 혼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엔 낡은 초가집 7채를 내 손으로 헐었더라구요.”

오랜 세월을 혼자서 절을 지켜낸 스님의 손마디가 단단한 굳은살이 박힌 지 오래되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바닷길을 따라 김희정 시인과 함께 고산 월성사(주지 성덕 스님) 를 찾아 스님을 뵈었다.

“스님 어떻게 지내세요?”

“달리 뭐가 있겠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지요!”

보름달 같은 미소로 성덕 스님이 순례객를 맞았다. 한결 같은 모습으로 한 자리에서 묵묵히 부처님을 모시고 도량 가꾸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스님이 이곳 고산 월성사에 온 지도 벌써 25년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절이 너무 낡아서 그냥 다시 떠나려고 했다는 스님은 바람이 불면 보따리를 쌌다가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보따리를 풀어서 일하는데 매달렸다고 하니 그 고생이야 이루 말도 다할 수 없었으리라.

결국엔 일곱 채의 초가를 허물고 전통방식으로 대웅전과 요사채를 짓고 신도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현대적인 장례식장을 갖추어 어디를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도량으로 만들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단다.

“내 할 일은 이것이라 생각했어요. 불사가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해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이제 불자들의 몫이 되겠지요.”

전통양식의 아름다운 대웅전부터 최첨단 시설을 갖춘 장례식장까지 두루 갖춰놨으니 쓰는 것은 이제 불자들의 몫이라는 게 스님의 생각이시다.

잘 갖춰진 도량에 정성스레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고 수행하는 일은 불자들의 몫으로 남아있으니 더 많은 참배객들이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부지런한 순례객들의 발길을 옮겨 고산 월성사로 가는 일이 남은 것이다. 거기서 저녁노을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새벽 월성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가을 하늘이 둥글다고 노래한 시인의 마음처럼 그렇게 둥근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과 만난다면 다툼이나 갈등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날씨가 맑은 가을에 더욱 하늘이 푸르고 둥근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한 번 더 하늘을 보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라고 하는 자연의 조언일 수 있겠다.

 

월성사 사찰참배를 와서 하룻밤 머물 수 있는 별채.
보름달 같은 작은 돌연못에는 핀 어리연꽃.

여름 끝자락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지혜의 길에서 만난 고산 월성사는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제주 서쪽의 아름다운 사찰로서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의 마음을 더없이 평화롭게 해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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