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에서 있음을 찾다‥ 있음에서 없음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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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에서 있음을 찾다‥ 있음에서 없음을 찾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09.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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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불교유적 문화답사-김희정 시인

지난 10일 제주문화유산답사회(회장 고영철) 제284차 제주역사기행-서귀포지역 불교유적, 그리고-을 함께하게 되었다. 중문동 존자암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도순동 법정사 터, 상효동 영천사 터, 상효동 관나암, 상효동 쌍계암, 신효동 월라사 터, 신효동 심우대, 보목동 수행굴로 이어지는 여정은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유적지는 흔적이다. 그저 빙 둘러 쌓아놓은 돌담만이 남아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시간의 힘이 느껴진다. 첩첩이 쌓아올린 단은 불단이었을 것이고 바로 옆 자리에 있는 물통은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 실마리들을 모아서 우리는 그곳에 절을 하나 세운다. 기행단 가운데는 불자도 있었을 것이고, 불자가 아닌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들은 안내자가 짚어주는 심증들을 모두 끌어 모아 마음에 터를 닦고 나름의 수행 도량을 여법하게 지어내었을 것이다.

가히 영웅의 기질을 닮은 바위들이 불뚝불뚝 솟아있는 관나암에서 웅장한 나례의식을 관하였을 옛사람의 무리 속에 들어가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 사방에서 울리는 풍악을 듣지 못했다면 관나암에 제대로 있지 못한 사람이다.

겨우 남은 주춧돌에서 그 옛날 선승의 푸른 선기를 찾아내고, 상전벽해로 변해있는 심우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을 수행자들과 만나는 일 또한 없음에서 있음을 찾아내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마지막 여정으로 보목동 제지기오름(절오름) 수행굴에 옹기종기모인 사람들, 그곳에서 해조음을 듣지 못했다면 그 사람 또한 그때에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음이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왜 보이는 절은 지나치고,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절터만 하루 종일 찾아 다녔지?”

또 누군가 그랬다.

“곳곳마다 치열하게 수행했을 수행자의 마음을 더듬어 볼 수 있어 뜨거웠어요.”

폐사지 답사현장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습기 머금은 저녁 바람은 우리를 다시 일상으로 데려다 놓았다. 없음에서 있음을 찾아 나선 오늘처럼 언젠가 있음에서 없음을 여실히 보는 날 꽃으로 장엄한 화엄세계가 펼쳐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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