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교사가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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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포교사가 되던 날
  • 장동순(보문 22기 신규 포교사)
  • 승인 2017.10.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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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순(보문, 22기 신규 포교사)

우리 부부는 지난해 1월 서귀포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결정한데는 형님의 권유와 더불어 제3의 인생을 살기에 제일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3월 서귀포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우리집안은 어머님을 비롯하여 형제들 모두 불교 집안이었다. 하지만 나 는 흔히 말하는 ‘초파일 불자’였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면서 성당 대신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가족의 평안과 번영을 발원하는 일이 많아 졌다. 이해는 잘 못하지만 천수경을 독송 하는 수준의 불자였다.

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우리는 어떤 서원을 가져야 할까 고민하였다. “불교란 무엇인가를 공부하며 부처님처럼 살아가 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불교 입문이다.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책을 나누어 주었다. 먼저 부처님 생애부터 읽자고 다짐했다. 큰 장애없이 수준에 맞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 다음 책들은 글들이 눈앞 에서 맴돌 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님 부부께서 제안을 해왔다. 금번 조계사 포교단이 주관해 인도 성지순례를 가는데 함께 동행하겠냐는 제의였다. 흔쾌히 동의하고 지난해 11월 형님 내외, 우리부부 막내 동생 등 다섯이 함께 지도법사 지월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성지를 다녀왔다.

백번 읽고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 하다는 속담이 이해가 됐다. 성지순례를 하던 중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부처님의 생애’란 책이 읽기 쉬운 것 같으면서 그 내용에 깊이는 어떤 경전이나 논서보다 심오했다. 이 무렵 대학에 서는 포교사 고시를 적극 권해 왔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형님 내 외가 포교사인 것을 내심 부러웠던 모양 이다. 그러면서 ‘우리도 포교사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라며 넌지시 내비친다. 나는 하는 수없이 아내의 무언의 끌림에 동참했다. 나이 들어 공부하려니 어제 본 것이 오늘 처음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봐야 할 것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결국, 포교사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우리 부부는 올해 9월 9일 팔재계수계법회를 위해 논산 호국 연무사로 가고 있다.

광주공항을 통해 선운사를 들려 논산훈련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하차하니 맞은편 건물위에 앉아계신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논산 입성을 반겨주었다.

‘논산훈련소’. 이게 얼마만인가. 국방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받던 시절,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를 목이 터져라 불러도 더 크게 부르라는 조교였다. 속으로 ‘영광은 무슨 곧 죽을 지경 인데’라며 힘겨웠던 시간들도 이제는 옛 추억이 되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부처님처럼 살자”라며 포교사 의 첫발을 내딛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고 앞에서 반겨주는 부처님을 바라보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앞 연병장에는 먼저 도착한 포교사들이 삼삼오오 정담을 나누느라 분주 한 모습들이다. 좌측에는 군종특별교구 육군훈련소 연무사가 우람한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실내를 들어와 보니 수많은 포교사들이 꽉 차서 시끌벅적하다. 나중에 알아보니 3500석이란다.

단상위에는 낮 익은 얼굴들이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행사 내용 중 나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는 품수식이다. 예비 포교사들은 품수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하얀티를 착용하란다. 하얀 티 착용 한 포교사들은 약 400여명. 본격적으로 품수식이 진행됐다.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 스님은 신임 포교사들을 자리에서 일어나라 하고, 포교사들께서는 신임 포교사들을 축하해 주란다.

단상에 있는 스님들과 3000천여 포교사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준다. 마음이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포교사가 되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그러나 이 환대를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그리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쿠시나가라에서 와불상을 참배할 때 몇 몇 불자들이 큰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나 역시 표현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사무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 그 감정이 되살아난다. 나 는 이 순간 바라든 포교사가 된 것이다. 부 처님처럼 살고 싶다는 서원을 세웠다. 과 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잘 하려면 어떠한 무장을 해야 하나 머리가 무거워졌다.

이어 팔재계 수계식 순서다. 신묘장구 대다라니 108독, 얼마를 암송하던 중 주관하는 전문포교사께서는 이제 끝내겠다는 선언을 한다. 졸음도 오고 피곤도하고 나도 그만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진행 하던 포교사가 메시지를 전 달한다. “108독을 모두 끝내라”고. 부처님처럼 살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그렇다면 포교사란 과연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불교의 교법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 승려나 신도’라고 되어 있다. 나는 다시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좀 더 쉽고 실천하기 간명한 것은 없을까? 번뇌의 본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지홍 스님께서 설법하신“붓다로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삶을 지혜롭게 △마음을 자비롭게 △세상을 평화롭게라는 문구들이 마음에 와 닫는다.

나는 이제 포교사이다. 세 가지 지침을 당간으로 삼고, 하나하나 실천해 보고자 다짐을 한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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