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원효성사 역설한 대승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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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원효성사 역설한 대승 마음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7.12.2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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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 주춧돌, 당신을 모십니다- 대한불교원효종 제주교구 명예종무원장 수경 스님 (해성사 주지)

본지는 격동의 한국 근대사에 태어나 제주불교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온 도내 원로 스님과 불자들의 지혜를 듣는 기획 프로그램‘제주불교의 주춧돌, 당신을 모십니다’라는 주제로 연재하고 있다. 이번호에는 도내 원효종 제주교구 종도들이 정신적 지주인 수경 스님(해성사 주지)를 지면에 모신다. <편집자 주>

 

원효종 제주교구 종도들의 정신적 지주인 수경 스님(명예종무원장)이 주석하는 해성사에서 매년 원효 성사 열반재일(음력 3월 29일)을 맞아 다례재를 봉행하며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종도들은 다례재를 통해 종조의 가르침인 화쟁과 일심, 무애를 본받아 다함께 성불하자고 다짐한다.

 

1984년 제주시 해안동 해성사 창건, 2003년 대웅전 중창
매년 음 3월 29일 해성사서 원효성사 열반 다례재 봉행

 

 민족의 큰 스승 원효 스님은 한국불교의 가장 큰 별로서 불교 정신을 대표하지만 제주불교에서 원효종단은 다소 생소할 법하다. 이는 대외적인 활동이 그만큼 활발하지 않다는 뜻도 내포한다.
대한불교원효종은 지난 1963년 대한불교원효종 포교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 원효대사의 정신을 계승 선양하고 있다. 그 당시 제주지역도 종단의 분규인 불교정화운동으로 인해 불교의 위상만 떨어뜨렸을 뿐 그 어떤 명분도 없었다. 분규에 싫증을 느낀 도내 스님들이 제주지역에 원효종 제주교구를 설립하게 된다. 제주지역에도 원효성사의 자비로운 일심사상과 상생공존의 화쟁사상이 씨앗을 뿌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던 원효종 제주교구는 몇 사찰이 탈종하면서 그 세가 예전 같지 않다.
그나마 원효종 제주교구 종도들의 정신적 지주인 수경 스님(명예종무원장)이 주석하는 해성사에서 매년 원효 성사 열반재일(음력 3월 29일)을 맞아 다례재를 봉행하며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 종도들은 다례재를 통해 종조의 가르침인 화쟁과 일심, 무애를 본받아 다함께 성불하자고 다짐한다. 
이제, 수경 스님의 출가 60여년과 그 획을 같이했던 원효종 제주교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기도할 때는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산문 밖 출입을 일체 하지 않습니다. 기도로 초발심과 신심을 다지고, 수행의 장애물을 돌파해 나갔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불심을 닮아 허공같은 빈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감싸는 포용력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빈곤하지 않고 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이 원효 성사가 역설한 대승의 마음입니다.”
기도하면,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한다! 원효 성사의 해골바가지 물에 관한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기도를 통해 바뀐 삶, 그것이 바로 가피라고 스님은 힘줘 말한다. 
스님은 이 같은 기도의 힘을 통해 부처님에게 귀의했고 또한 생명도 다시 얻어 새로운 삶을 영위해 왔다. 스님은 17세에 병을 얻어 개신교에 이어 가톨릭을 찾았지만 병이 낫지 않자 마지막으로 귀의한 곳이 부처님 품안이다.
스님은 한라산 영실에 있는 속칭 ‘지옥단’이라는 곳에서 산신기도를 하며 부처님께 몸을 의지했다. 기도한 지 1주일 만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스님은 현몽하고 밥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병이 호전됐던 것. 
그 후 스님은 제주시 광명사를 비롯해 한림읍 동명리 대성암, 산방산 청정암, 한경면 낙천리 법주사 등에서 수행정진했다. 지난 1969년 한경면 저지리 학림사를 창건 후 대정읍 안성리 보현사 주지였던 이경 스님을 은계사로 수계를 받았다. 
우리나라 유명 사찰들이 좋은 기도터에 자리 잡았듯, 한라산 기운이 가득한 영실에서 기도를 했던 스님은 ‘기도 터’의 중요성을 예감해 온 터였다. 그래서 기이한 기암괴석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구친 나무들만 보고 있어도 인간사의 복잡한 근심을 풀어 준다하여 이름 붙여진 무수천(無愁川) 계곡 인근에 지난 1984년 현 해성사를 창건해 그 인연이 닿는다. 특히 해성사 도량에는 ‘미남골’이라 불리는 해안동 마을주민들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는 용천수가 자리했다. 예전에는 해성사에서도 감로수를 부처님 전에 올렸지만 지금은 오염이 심해지면서 농업용수로만 사용되고 있다. 
출가 후 60여년을 수도정진 한 스님은 부처님의 진리와 자비심을 신도들과 늘 함께 하며 그동안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가피를 신도들에게 회향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 인연들이 모여 지난 2003년 8월에는 165㎡(50평) 규모의 대웅전을 중건, 여법한 도량으로 재탄생했다. 이어 2008년에는 높이 8m의 관세음보살상 점안의식을 봉행하면서 그 주변에 인공폭포를 조성, 관세음보살의 감로수와 같은 자애로움을 사바세계에 전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6년에는 미얀마 양곤 소재 야자조 사원의 와이따 큰스님으로부터 이운 받은 부처님 진신사리와 목련존자 사리를 해성사 7층 석탑에 봉안, 도량의 여법함을 더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관세음․대세지보살을 협시불로 봉안했고, 그 옆으로는 지장보살을 모셔 중생들의 원력을 이뤄주고 있다. 섬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도내 사찰이 관세음보살도량이 아닌 곳이 없듯 해성사 역시 관세음보살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스님은 “관세음보살과 같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 즉 자비를 주고 고통은 덜어주는 그런 마음을 항상 가슴속에 품길 바랐다”며 “이는 신도들이 관세음보살 기도를 통해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기도를 끝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도량석 만큼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18지옥을 깨우는 18번의 종성 뒤 아침 예불로 이어지는 수행은 스님으로서의 본분사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세수가 듦에 따라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럴 때마다 원효종제주교구에 대한 걱정도 앞선다. 제주교구가 번창할 당시에는 제주불교연합회에도 활동하며 종단의 목소리를 냈지만 지금은 그 세가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원효종은 서울 효창공원 원효 스님 동상 앞에서도 매년 다례재를 봉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둘기 등의 분비물로 지저분해 지면서 동상이 훼손되고 있지만 지자체가 손 놓고 있으면서 방치되고 있다. 스님은 제주교구가 그와 다르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비록 해성사에서 다례재를 봉행하며 제주교구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종조의 가르침을 널리 펴지 못한 후손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스님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물론 원효 성사는 이를 바라지도 않을 수 있다. 언제나 언어적 갈등에서 벗어나 화쟁으로 소통하는 사회를 이끌어 가셨던 원효 성사가 아니던가.  
원효종단이 소의경전인 《화엄경》에서 답을 찾는 스님이다. <현수품>에 ‘믿음은 도(道)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다(信爲道元功德母). 그러므로 일체선법을 길러낸다(增長一切諸善法)’는 구절을 예로 들며, 결국 원효종 제주교구가 나아갈 길에 대해 스님은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흔들림 없이 노력할 수 있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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