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대처하는 현대인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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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대처하는 현대인의 선택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1.1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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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현대인을 위한 <릴리 드 실바> 교수의 제안

릴리드 실바 교수가 제안하는 불교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다소 고전적인 듯 보이지만 그만큼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오계를 지키면서 적은 것에 만족하고 수행하는 삶이 현대사회가 내뿜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편집자주>

 

 

교육과 취업을 위한 경쟁은 아주 심각해져서 자살률을 증가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감각적 쾌락도 너무 탐닉하다보니 이제는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되어 갈증을 풀려고 소금물을 마구 마셔대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감각기관은 끊임없이 자극을 가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어폰이 달린 소형 라디오와 껌 그리고 화장품들은 어디서나 살 수가 있다. 이렇듯 감각적 자극은 무절제하게 계속되는데도 자극에 신물을 내게 될 날은 좀처럼 올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하나같이 이런 형편인데 어떻게 사람들이 극도의 혼란과 좌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으며 그의 생활이 견딜 수 없으리만큼 스트레스로 가득 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상태를 불교에서는 ‘안으로 엉키고 밖으로도 엉키어 사람들은 꼼짝없이 엉킴 속에 말려들고 말았다’고 묘사한다.
이상의 관찰은 오늘날의 상황을 현대 학문의 관점에서 살펴본 것인데, 불교에서도 비슷한 관찰을 행하고 있는 바 그 시각은 일종의 심리학적 견지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은 다섯 가지의 심리적 상태 때문이며, 이 다섯 상태는 인간성 전체를 감쌀 만큼 광범위한 성격의 것이라 한다. 이것을 보통 다섯 가지의 덮개[五蓋, pancaniivara.na] 라고 부르는데 이는 다섯 가지의 장애라는 뜻이다. 
이것들은 행복을 훼방놓을 뿐 아니라 사람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또 외부 여건에 대해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올바른 통찰을 못하게 된다. 이 덮개가 두껍고 배면 밸수록 더 큰 스트레스와 고통을 맛보게 된다. 반대로 얇고 성기면 성길수록 스트레스와 고통은 줄어들고 행복이 그만큼 늘어난다. 이 다섯 가지의 덮개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분노·나태함·근심 그리고 의심이다.
빠알리경은 이들 다섯 덮개가 활동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재미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은 착색된 물과 같아서 사물의 그림자를 실물 그대로 비추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도 사실적인 시각을 지닐 수 없게 된다. 분노에 짓눌리고 있는 마음은 끓고 있는 물과 같아서 정확한 영상을 비출 수 없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있는 사람은 주제를 제대로 판별할 수가 없다.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나태한 마음은 이끼 덮은 물에 비유된다. 이끼 때문에 빛이 물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형상을 비춘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게으른 사람은 올바로 이해하려는 노력마저도 하지 않는다. 
근심하는 마음은 바람이 휘몰아쳐 출렁이는 물결과 같아서 역시 실물 그대로 비춰낼 수 없다. 근심하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정하여 주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의심하고 있는 마음은 어두운 곳에 놓인 탁한 물과 같아서 영상을 잘 반영할 수가 없다. 
이처럼 그 다섯 가지 덮개는 하나같이 마음으로부터 올바른 이해와 행복을 앗아가며 스트레스와 고통만을 잔뜩 안겨준다. 

 

릴리 드 실바는 스리랑카 페리데니야 대학 불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장부경 복주석서(Diigha Nikaaya A.t.thakathaatiika)』를 감수하여 런던의 빠알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에서 세 권으로 간행케하였고,「Paritta: 스리랑카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불교법어집」을 저술했다.

 


불교에서는 스트레스를 점차적으로 해소하고 행복과 지혜를 늘려나가는 체계 정연한 행동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방침에서 권장하는 행동의 첫걸음은 살생·도둑질·간음·거짓말·음주를 않는 이른 바 오계의 준수이다. 죄를 지으면 스트레스가 크게 강화된다. 따라서 오계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양심을 죄의식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법구경은 말한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이 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고통을 받는다. 한편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기쁨을 누린다(17-18게).”
악은 스트레스를 늘리고 선은 행복을 늘린다고 불교에서는 굳게 믿다. 평생동안 지켜야 하는 오계에 더하여 불교는 재가자에게 대해서만은 정기적으로 8계를 지킬 것을 주장한다. 여기서 첨가되는 계목들은 우리들을 탐욕을 충족시키기 보다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조촐한 삶을 영위하도록 우리들을 훈련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욕심이 적고[少欲] 쉽게 만족하는[知足] 검소한 생활 방식을 불교는 높이 찬양한다. 우리가 그다지도 스트레스를 많이 겪게 되는 것은 다름아니라 무엇이든 손에 넣고 싶어하는 탐욕스런 정신상태 탓이다.
행동지침의 두 번째 걸음은 감각기능들을 제어하는 것이다. 만일 감각 기능을 제어하지 못하면 우리는 심한 과로와 긴장을 겪게 된다.
우리는 먼저 감각기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이 눈으로 아름다운 대상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에 마음이 끌린다. 기분 나쁜 대상을 보았을 때에는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다른 감각기능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각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감각 대상들에게 이끌리거나 뿌리치거나 하고 있어야만 한다. 깨어있을 동안은 감각대상들이 감각기관에 끊임없이 부딪쳐 오기 때문에, 잠시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감각자극이 여러 방향에서 끌어당길 경우 우리는 혼란에 빠져 피로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감각기능들은 서로 다른 행동 영역과 대상들을 가지고 있고, 또 각자의 영역 안에서는 주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은 혼자서도 또 협력해서도 인간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 또는 지배자를 뜻하는 인드리야(indriya)라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기능에 자신을 내맡긴 채 지배를 당하고 있으면 우리는 심한 혼란을 겪어야 한다. 반면에 과감한 태도로 자신의 감각기능을 제어하고 나설 경우엔 `순수무구한 즐거움(avyasekasukha)을 맛볼 수 있다. 이 즐거움을 순수무구하다고 하는 까닭은 거기에는 전연 번뇌가 섞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고매한 마음의 즐거움(adhicittasukha)이라고도 부른다. 감각적 쾌락은 스트레스만 늘려줄 뿐인데 반해 이와 같은 형태의 정신적 즐거움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의 평화와 만족감을 증대시켜 준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세 번째 단계는 선정수행(bhavana)을 통해서 선(善)한 정신적 습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우리가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고 청결을 유지하여 몸을 돌보고 가꾸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마음도 적절한 자양분의 섭취와 청결을 필요로 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선 마음처럼 변덕스럽고 경박한 것이 없지만 일단 유순해져서 안정만 되면 마음은 커다란 행복을 가져온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길들이는 두 가지 기초적인 선정수행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른바 사마타(samatha)와 위빠싸나(vipassana) 즉 고요함[止]과 통찰[觀]이다. 사마타란 날뛰기 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고, 위빠싸나란 육체적 정신적 현상의 참다운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스트레스를 극복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  사문과경(沙門果經)  은 다섯 가지 덮개 때문에 생긴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선정 수행을 통해 어떻게 없어지는가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선정을 닦는 사람은 시원히 벗어나는 느낌을 크게 얻는다. 이처럼 짐을 풀고 놓여나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다섯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기 위해 빚을 얻어서 자본금을 모았다. 그리고 그는 사업이 번창하게 되어 빚을 모두 다 갚아버리고 아무런 경제적인 부담없이 나날의 일을 잘 꾸려간다. 이 사람은 크게 시원한 기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비유에서는 만성병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심하게 받고 있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오랜 고생 끝에 드디어 식욕을 되찾고 건강을 회복한다. 이 사람이 경험하는 시원함도 아주 큰 것이다.
세 번째로는 매우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가 풀려나서 맛보는 시원한 기분을 들고 있다.
네 번째 비유는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노예에 대한 이야기다.
다섯 번째 비유는 먹을 것 하나 없이 황량한 사막에서 길을 잃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침내 안전한 장소에 도달하게 되자 그는 커다란 안도감을 경험한다.
다섯 가지 덮개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될 때, 위에 비유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시원함과 유사한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난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최상의,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선정을 수행하는 것, 즉 정신을 계발하는 일이다. 하지만 선정을 닦으려면 그 준비과정으로서 최소한 다섯 가지 계는 지켜야 한다.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함과 같은 적극적인 심성들을 계발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이겨나가는 또 다른 방법이다. 긴장된 대인관계는 가정생활이나 직장에서 흔히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자애심은 적극적인 선한 마음가짐으로 이것을 키우면 모든 대인관계에서 자신이나 남에게나 두루 이익이 된다. 연민[悲]은 괴로움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살피고 도와줄 때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다. 더불어 기뻐함[喜]은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기꺼워할 수 있는 아량이다. 천박한 성품의 사람이 이런 태도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남의 기쁨에 질투심을 품는 게 고작이다. 질투가 있는 곳에 화합은 없다. 화합이 없는 곳에 발전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위와 같은 긍정적인 심성들을 길러나가면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다같이 기약할 수 있다.
평온함[捨]은 무상하기 짝이 없는 삶의 부침(浮沈)에 부닥뜨리면서 견지해야 할 태도이다. 우리가 살아가노라면 자연히 부딪칠 수밖에 없는 여덟 가지 일들이 있다. 이익과 손해, 명성을 얻고 잃는 것, 칭찬과 비난, 행복과 슬픔이다. 우리가 이러한 인생의 부침에 부닥뜨렸을 때 우쭐해지거나, 의기소침해지는 일없이 평온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길들인다면, 많은 스트레스를 피해서 평화와 만족을 느끼며 조촐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세상을 바꿔봐도 거기서 참 행복은 얻어지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세상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으며, 그리하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영향을 입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된다. 불교는 이와 같이 마음과 몸 양면으로 건강에 좋은 태도 변화를 이루는 길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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