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 평화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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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평화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길…”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8.01.31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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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사

겨울바람이 불던 날 하도리 금붕사를 찾았다. 거기에서 오백나한도를 보고, 이성봉 스님의 작은 추모비를 보면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들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소중한 것을 참으로 소중하게 배울 수 있도록 금붕사가 평화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축원해 본다.  <편집자주>

 

부처님과 오백 명의 제자들
   -금붕사 오백나한도- 
                                        김희정 시인

피부가 까무잡잡한 제자
피부가 뽀얀 제자
피부가 노르스름한 제자
피부가 발그레한 제자

키 작고 못생긴 제자
키 크고 잘생긴 제자
옆 친구와 떠드는 제자
뒤돌아서 장난치는 제자

오백 명의 별별 제자
부처님이 사랑하는 제자
부처님을 사랑하는 제자
신통방통 부처님을 닮은 제자들

그림 속에 다 모였네.

 

▲쌀쌀한 겨울 날씨에도 금붕사 대웅전 위로 파란 하늘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올 겨울에는 제주에도 동장군 힘이 세졌다. 눈이 많이 내려 대중교통마저 편하지 못해 일이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닥친 추위로 인해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같은 추위가 있는 날 오히려 산에 간다거나 순례를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일은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그래서 순례라도 하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순례를 나서는 것이다. 
겨울 코끝이 씽하도록 매서운 바닷바람이라도 마시면 속이 확 트일 것 같아 발길은 하도리 금붕사를 향해 나아간다. 

▲금붕사 오백나한도


하도리 금붕사에는 태고종단을 넘어서서 수행자로서 학자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수암 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신 곳이다. 스님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해 박사학위를 두 개나 따고 15년 넘게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여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리고 겨울바람이 거칠게 느껴지는데도 순례객이 굳이 금붕사를 찾아나선 것은 그곳에 모신 오백나한도를 보고자 해서다. 법당마다 탱화가 걸려있는데도 유독 금붕사의 오백나한도를 보려는 이유를 묻는다면 되레 묻는 이에게 함께 가서 보자고 손을 잡고 가고 싶다. 
문화재도 그렇고 순례지도 그렇고 모든 것이 스스로 해 봐야 그 맛을 아는 것이기에 이야기를 듣고 한 번 가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것도 좋은 데 직접 보면 얼마나 큰 감동이 일겠는가. 그 감동은 그곳에 간 사람만이 오롯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 되는 것이다.  
금붕사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면 제주시에서 한 시간을 달려 하도리에서 내려서 큰 길 오른쪽에 보이는 황금색 표지석을 찾아가면 된다. 
일주문을 대신해 넓은 주차장과 절마당을 잇는 곳이 나무와 돌로 자연스럽게 경계를 이루고 있고, 겨울눈을 맞은 돌담과 나무가 참신한 낯빛으로 순례객을 맞는다. 
순례객은 겨울 잔디를 살포시 즈려 밟으며 오백나한도를 보기위해서 먼저 법당 참배부터 서둘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렇게 달려갔다.

▲금붕사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


법당에 들어서자 이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다시 오른쪽에 있는 나한도로 발길을 돌렸다. 큰 스님 말씀으로는 한 150년은 좋이 넘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월의 풍화로 연기문이 지워져 연대추정이 어려워지고 낡고 해진 그림을 다시 보수했다는 이유로 번번히 문화재 선정에서 탈락이 되었다고 하니 다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오백나한도는 전국 유일의 그림으로 단연 독보적인 것이라는데는 의의가 붙지 않아서 더욱 가치가 있다. 
유심히 바라보니 오백나한이 정말이지 여러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얀 얼굴의 아라한이 있는가 하면 까만 얼굴의 아라한도 보이고 우리와 닮은 누르스름한 얼굴의 아라한의 모습도 보인다. 아라한은 부처님과 같은 마음으로 깨달은 성인을 이르는데 그 성인들의 얼굴은 각양각색으로 표현되어 있어 부처님의 평등한 사상이 잘 보여지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금붕사에서 그 같은 좋은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좋은 일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성봉 스님 추모비


또 한 가지 금붕사에서 놓쳐선 안 될 것이 있다면 바로 4‧3의 상처가 남긴 아픔이다. 법당을 나와 요사채 근처에 세워진 이성봉 스님을 기리는 추모비가 그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이성봉 스님은 해방 당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불교포교에 힘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나가던 목동을 숨겨졌다는 이유만으로 토벌대에 끌려가 총살을 당하는 비극이 여기서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의 자비행을 실천하려다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스님의 영혼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친지들이 세웠다는 작은 추모비는 그동안 불교계의 4‧3피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데다 스님들의 자비행이 오히려 좌익활동으로 치부하는 이들의 잘못된 편견으로 인한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 금붕사가 43의 비극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세들을 위한 평화교육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곳에 주석하시는 큰 스님의 바람이란 것을 이곳을 다녀간 불자들은 알고 있다. 
오백나한도와 43평화교육이 어쩌면 그렇게 인연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인들이 이곳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받고 알아치리고 평화를 전하는 아라한이 되는 것이 이 오백나한도에 깃든 의미라고 해석한다면 순례객의 지나친 꿈은 아닐 것이다. 
이성봉 스님에 이어 수암 스님에 이르기까지 4대째 이어진 출가의 정신이 이곳 금붕사를 외호하면서 후세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고 있기에 그것은 단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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