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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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는 분명하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2.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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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덕스님의 마음법문

사바세계의 중생계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인간의 몸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에 비해 개와 고양이 등 축생의 모습을 받아 먹이 사슬에 의해 살아간다. 서로 쫒기며 먹고 먹히는 축생의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가 있다. 
우리는 다행히 금생에 사람의 몸을 받아 살아가고 있다. 이에 수많은 힘든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면서 지혜로운 삶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삶은 기쁜 일보다는 힘든 나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죽음의 벼랑 끝에서 큰 장벽을 넘고 또 넘으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삶과 살아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또 어떤 이는 어릴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반면 어떤 이는 대기업의 자식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요즘 흔한 말로 흙수저와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태생을 원망하기보다 주변의 환경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환경에 매몰되어 자신의 삶을 한탄하다가 다음생에도 그 업을 짊어지는 이도 있다.  
그리고 남녀의 잘못된 만남으로 싸움과 부정으로 인해 안타까운 생명을 잃는가 하면 어떤 이는 불행하게도 교통사고 등의 순간적인 실수로 목숨을 잃는 이도 있다. 
왜 인간의 삶은 좋은 일보다도 고통 받으며 또 아픔을 겪으며 살까. 그리고 서로를 원망하고 눈물지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업자득과 인과의 법칙으로 저절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은 전생과 금생, 내생인 삼생의 원리가 금생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치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를 인과응보라고 한다. 그것은 먼 과거 전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업들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인연이 되어서 되돌려 받는다. 이는 지었던 업이 저장된 상태에서 선과 악의 시절 인연이 닿으면 업력의 힘에 의해 업풍이 불어 닥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삶의 고통과 고난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지은 인과는 지구 끝까지 아무리 멀리 도망치고 달아난다 하여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한 생에서 무(無)로 되돌리지 못한다면 또 다른 생으로 이어진다. 반드시 받게 되는 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중천세계를 뛰어넘어 어리석은 중생계를 벗어나 해탈의 삶과 대자유인으로서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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