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탑 일출봉을 품은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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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자연탑 일출봉을 품은 도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2.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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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사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지혜의 길 일출봉 동암사를 찾았다.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할 수 있는 자연 전망대인 일출봉의 초입에 자리한 동암사가 그야말로 일출봉을 두 팔로 품에 안고 있는 듯하다. 초봄이 가까워지면서 더 의미있는 것들을 찾기위한 순례객들이 다시 동암사를 들러 일출봉으로 오르고 있었다. <편집자주>

 

하루라는 이름의 꽃
  
                           김희정 시인

성산일출봉 푸른 꽃대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꽃 한 송이 피워올린다. 

하루라는 이름의 황금빛 꽃

 

설명절도 끝나고 가족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멀리서 자신들의 꿈을 펼치고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힘을 얻는 시간인 설은 때로는 큰 위로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간섭하려드는 때문인지 상처로 덧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한 가지로 보였을 법한 추억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각자 자신의 눈으로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입장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자칫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 감정싸움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유머와 위트로 가볍게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두고, 지금 이 순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기억하면 어떨까.

▲계단을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동암사 대웅전의 모습


새해 아침은 아니지만 늘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산 일출봉 동암사(주지 진철 스님)를 향해 순례길을 내디뎠다. 제주시를 중심으로 해서 동과 서로 나뉠 때 동은 동대로 서는 서대로 각자 개성을 지니고 있다. 서쪽이 오밀조밀한 멋이 있다면 동쪽은 확 트인 느낌으로 시원스런 여유가 느껴진다. 

▲동암사에서 일출봉으로 향해서 갔던 옛길.


여러 길이 있지만 오늘은 97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세화를 지나 표선에서 성산으로 가는 갈림길로 들어서서 성산일출봉에 이르렀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성산 일출봉은 늘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면서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날마다 붉은 해를 토해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일출봉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어 그런지 주차장은 렌터카와 관광버스로 붐볐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지혜의 길 동암사는 일출봉의 초입에 당당하게 서 있어서 누구든지 부처님의 품안으로 들어설 수 있게 열린 공간으로 일주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총총히 계단을 오르니 동암사 대웅전이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의 모습처럼 그렇게 장엄하게 서 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오래된 아미타부처님


동암사 대웅전 참배를 하면서 부처님의 마음과 순례객의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느낀다. 그리고 충만함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절을 찾아 이곳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법당 안에서 만큼은 순례객은 석가모니부처님과 보현보살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자애로운 미소처럼 마음이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며 지금 이대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동암사에는 또 오래된 아미타부처님이 봉안되어 있어 순례객들의 눈을 다시 한 번 사로잡는다. 일출봉에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광명처럼 아미타부처님의 진리는 모든 생명들에게 골고루 퍼져나가 비추고 있기에 지금 여기가 바로 정토가 되고 극락이 되는 것이다. 
동암사 법당 참배를 마치고 진철 스님을 뵙고 늦은 세배를 올렸다. 
“스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이러한 덕담을 주고 받으며 스님이 건네주신 차 한 잔을 받아 드니 찻잔에서 감도는 차 향기만큼이나 순례객의 마음도 편안해져 온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 동백꽃.


동암사는 빛바랜 1934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1970년대에 찍은 흑백사진 속에서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절 나들이를 온 보살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스님의 말씀으로는 그 시절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온 마을 사람들이 하루 종일 절에서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고 하니 새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은 옛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진철 스님이 들려주는 공양이야기. 널리 알려진 수자타 공양과 춘다 공양에 이어 미얀마 상인들이 올린 공양으로 미얀마에는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모신 대탑을 세우게 됐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는 그 인연이야말로 얼마나 수승한 인연인가를 새삼 느끼면서 아름다운 공양의 미덕이 여전히 계속되길 바랐다. 
이어서 동암사 마당에 세워진 해수관세음보살상과 포대화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이고 병풍처럼 드리워진 일출봉을 향해 포행에 나섰다. 
동암사를 나와서 마주한 일출봉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거대한 자연탑처럼 느껴졌다. 우주법계에 꽉 찬 부처님의 성품을 그대로 품고 있을 법한 일출봉의 모습이 그처럼 당당해 보였다. 
또 정상을 향해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니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진 서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몰아쉬고 오던 길 되돌아보며 번뇌로 들끓었던 지난 시간들을 툴툴 털어내듯 마음이 밝아졌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서 옛 선지식들이 오르던 진리의 길을 떠올려본다. 진리의 완성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을 옛사람들의 자취가 여전히 묻어있는 이 길을 지금 이 순간 걷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순간 그 길에 나 또한 함께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주저하는가. 동쪽에서 날마다 떠오른 태양광명의 대자비를 알아차린다면 삶은 그저 한 조각 꿈이고 물거품이고 그림자가 아닌가. 
내려오는 길에서도 역시 일출봉은 마음 가득 자리해 있다. 늘 그 자리에서 오랜 세월동안 세간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일출봉, 그곳을 의지 삼아 살고 있는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동암사의 일출봉은 부처님의 자취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도량이 아닌가. 시인이 노래한 날마다 피워 올린 꽃 한 송이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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