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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에세이 - 하래비소와 미국 이모에 대한 추억
김 승 범(흥사단문화센터장/본지 객원기자)

봄이 되니 마음도 싱숭생숭하여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어릴 때 추억이 물씬 풍겨온다. 뒷동산 근처 냇가에 하래비소가 있다. 동네 아이들이 뒷동산에서 자주 놀았는데 편을 나누고는 대나무로 만든 활을 쏘며 장군놀이 하다가 하래비소에서 멱을 감기도 했다. 그러나 용암이 흐르다가 굳어진 바위라서 물 입구 말고는 바닥이 깊어서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끈거려서 속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하래비소에서 혼자 놀던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러면서 그곳을 피하게 되었고 멱 감으러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하루는 뒷동산에서 삘기를 뽑으며 놀고 있는데 사촌누님이 불러서 집에 가보니 영화에서 보았던 멋진 여자와 정장을 입은 외국인이 서 있었는데, 여자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루주를 진하게 발라서인지 미인으로 보였고 남자는 푸른 선글라스를 걸쳤는데 피부는 하얗고 약간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나를 보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웃는 거였다. 인사로 악수를 했더니 과자 한 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그 당시는 카메라가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이모부가 기념이라면서 나와 동생과 영순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기에서 갑자기 불이 번쩍하여 놀랐던 기억이 선명한데 외삼촌 네 뒤뜰에 있는 감저구뎅이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인데 지금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저녁 식사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여자는 어머니 언니이고 겁나는 외국인은 이모부다. 이모네는 애가 없어서 양아들이 필요해서 한국에 왔다가 처가인 제주도로 왔고, 우리 집에서 둘째 아들인 나를 외국으로 데려가 양아들로 삼고 공부를 시킨다는 거다. 나는 은근이 겁이 나서 따라가기를 한사코 거부하였다. 
그 후에도 제주도에 몇 번이나 다녀갔다. 이모는 올 때마다 히스테리를 부리고 우리 가족들과 말다툼이 잦았다. 이모부는 뒷방에 앉아 맥주를 물마시듯 많이 마시는 것을 보고는 손짓 발짓으로 왜 맥주를 많이 마시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맥주는 음료수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이모를 따라 미국으로 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좋겠지만 나중에는 엄청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모 때문에 같이 살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 자수성가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 따라간 지금이 잘된 것인지 따라갔어야 잘됐을는지 지금은 참 궁금하다.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나 미국으로 데려간다고 했다는데 막상 그때가 되자 이모네로부터 연락이 끊겼다.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모는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였는데 머리가 비상하여 군부대 근처를 맴돌다가 미국 군인을 만나서 미국으로 건너가고 처음 만난 군인과는 헤어지고 의사인 지금의 이모부를 만났다고 한다. 이모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우리 집에도 풍경화 한 점을 보내와 마루 벽에 걸어두었는데 그런데 그 그림도 누가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흘렀고 이젠 추억도 아련해간다. 전쟁을 지내면서 어려웠던 시절에 미국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했지만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나는 경찰관, 둘째 동생은 소방관, 영순이는 서울에서 부동산 소개업을 하고 있다.
나머지 동생들은 그 당시 태어나지 않아서 이 이야기에는 끼워 넣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하래비소에서의 추억과 거기에서 추억되는 부분을 적어보았다. 요즘에 가보았더니 하래비소는 물이 말라서 건천이 되었고 그 깊었던 곳이 돌 바위만 남아있다. 냇가에는 몇 번의 공사를 거쳐서 놀이터를 조성하고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았는데 왜 거기에 설치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일 년에 한 두 번 운동하러 가는 사람이 있을까 말까 한다. 그냥 녹슬어 가고 있는 운동기구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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