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법문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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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법문 (46)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5.1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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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① : 부처님 최초 설법이자 최후 설법

팔정도(八正道)는 37보리분법의 마지막인 일곱 번째에 해당한다. 문자적으로 팔정도는 여덟 가지 바른 도라는 뜻으로, 경전에서는 항상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ariya atthaňgika magga, 八支聖道)로 나타난다.
그런데 왜 이것이 우리에게는 팔정도로 정착되었을까? 이것은 한역4아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역 『중아함』과 『잡아함』과 『중일아함』에 포함된 여러 경에서는 거의 대부분 팔정도로 옮겨져서 정착이 되었고 그 외 여러 대승경전들과 논서(論書)들에서 팔정도로 정착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용으로 볼 때 바른 견해부터 바른 삼매까지 모두 정(正)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름’을 부각하여 팔정도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팔정도는 『상윳따 니까야』 「도 상윳따」의 주제이기도 하다.
팔정도는 부처님의 최초 설법이자 최후 설법이다. 부처님의 최초 설법을 담고 있는 「초전법륜경」(S56:11)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알아차림[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를 담고 있는 「대반열반경」(D16)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마지막 유훈으로 다섯 가지를 당부하시기 이전에 설법의 형태도 말씀하신 최후의 가르침은 수밧다(Subbadha)라는 유행승에게 하신 설법이다. 수밧다는 부처님께 ‘육사외도’가 최상의 지혜를 가진 자들인가를 여쭈었고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밧다여,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없으면 거기에는 사문(예류자)도 없다. 거기에는 두 번째 사문(일래자)도 없다. 거기에는 세 번째 사문(불환자)도 없다.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아라한)도 없다. 수밧다여, 그러나 어떤 법과 율에서든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으면 거기에는 사문도 있다. … 거기에는 네 번째 사문도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가 된 수밧다에게 “팔정도가 있기 때문에 불교 교단에는 진정한 사문이 있다”고 하신 이 「대반열반경」의 말씀은
불교 만대에 길이 남을 대사자후이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최초 설법도 중도인 팔정도로 시작하셨고 최후 설법도 팔정도로 마무리하셨다.
「마하고윈다 경」(D19)에 보면 팔정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생의 마하고윈다였을 때 열반을 실현하지 못하고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것만 가능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금생에 팔정도 수행으로 열반을 실현하여 윤회를 끝내고 완전한 열반을 증득하였다고 강조하고 계신다.
그 외에 「마할리 경」(D6)과 「깟사빠 사자후 경」(D8), 「빠야시 경」(D23) 등에서도 팔정도를 불교에만 있는 가장 현저한 가르침으로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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