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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기나는 글 - 당신을 위한 천 년 -신과 함께2-
김희정(시인)

 “이미 천 년 전의 일인데 뭐…….”
 그들은 천 년 전에 이승에서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죽고 죽이던 원한 관계였다. 그들이 이승을 떠난 지 천 년, 저승에서 그 천 년의 시간을 바라보는 차사들은 그저 헛헛한 웃음마저 흘린다. 
  영화는 140여분이라는 다소 긴 시간 동안 상영되었지만 영화가 내게 던진 키워드는 단순했다.
 첫째, 세월이 약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표현이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면 천 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거느리니 제법 실감이 난다. 천 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사랑이니, 미움이니, 원한이니 하는 감정들은 이미 녹아서 흐물흐물해져 버린 것이다. 원래가 없는 모양을 지어놓고 지키고 있던 그것들에게 용서라는 말은 굳이 찍지 않아도 이미 뜻이 통하는 완성된 문장의 마침표와 같을 뿐이다. 
 둘째,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인간 세상에 현신해서 천 년을 산 가택신 성주의 말을 들어보자. 요지는 이렇다. 
  “내가 성주신으로 천 년을 살다보니 깨달은 게 있는데, 나쁜 상황은 있어도 나쁜 사람은 없더라.”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가? 큰 차원에서 본다면 나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닌 그저 어떤 가능성을 가진 존재일 뿐이다.
셋째,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성주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나도 살아보니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나 사람이 있더라고. 그럴 때는 거꾸로 보면 이해가 돼.”
살다보면 내가 최선을 다한 일이 상대에게는 최악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경우 양쪽이 다 분노한다. 입장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경우인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억울하다면 이렇게 거꾸로 보자. ‘정말 내가 피해자이고 상대가 가해자일까? 정말 내가 배신을 당했고 그래서 상대가 배신자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을 거꾸로 보면 나는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인因을 심었고, 그 과果가 나타났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람의 상황과 형편이 그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나도 그 입장이면 그보다 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도 바꾸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비록 어려운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마음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넷째, 이해와 오해 사이에도 많은 공간이 있다. 
 이승에서의 수많은 갈등이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영화는 곳곳에 펼쳐놓았다. 이해가 안 된다고 성질 급하게 바로 오해로 뛰어넘지 말고 부디 이해와 오해 사이에도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 좀 하시란다.
 끝으로 나는 당신에게 천 년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천년의 시간은 마음의 시간이다. 그러니 어쩌면 영화 상영시간 140분이 천 년이 될 수도 있다. 약이 되는 천 년을 내 안으로 빨리 끌어당겨 쓸 수 있다면 무명이 만들어낸 환상의 고통은 끝이 날 것이다. 
그도 저도 안 된다면 나름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의롭게 살다 죽은 귀인의 환생을 돕는 신들이 저쪽 세상에는 있다고 하니…….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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