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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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감사할 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8.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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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 에세이 ‘길 위에서’ (1)

오랜 만에 그 보살을 만났다.
 “잘 지내셨지요?”
의례적인 내 안부에 보살은 뜻밖의 안부를 전했다.
 “우리 회사에 큰 사고가 있었어요.”
 “왜? 왜? 무슨 사고?” 
놀라서 묻는 나의 다급함과는 달리 보살은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촉촉한 물기로 그때의 사고가 가벼운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회사 화물차가 몇 중 충돌 사고를 냈어요. 기사가 깜빡 졸았는지…. 100퍼센트 우리 차 잘못이라 배상을 안 할 수가 없었지요. 1억 정도는 보험회사에서 나왔지만 나머지 1억 가까이는 그냥 생돈이 들어갔어요.”
  생돈이 맞았다. 보살의 남편은 자그마한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데, 따로 경리 직원을 두지 않고 보살이 남편을 도와 혼자서 사무실 일을 맡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부부가 성실하고 알뜰하게 일을 해서 번 돈이니 생살과 같은 돈이 맞을 것이다. 순식간에 1억이라는 돈을 날려버렸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일주일을 울었어요. 사무실에 출근해서 앉아있으면 그냥 눈물만 흐르더라고요.”
그날의 일이 떠오르는지 보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세상에!” 
큰일을 당한 보살 앞에서 딱히 위로가 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탄식만 흘려보내고 있는데 보살의 급반전 법문이 시작되었다.
 “근데요, 그렇게 딱 일주일을 울고 나니 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보살의 이런 생각은 이러했다.
 그렇게 대형 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크게 다치거나 죽지 않은 것이다. 보살의 회사차는 대형 덤프트럭이라 살았고, 상대방의 승용차는 값비싼 외제차라 그런지 차는 휴지조각이 되었는데도 사람이 크게 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하필 값비싼 외제차를 들이받아서 그렇게 큰돈을 물어 주었을까’어이없고 기가 막혔던 생각이 ‘다행히 값비싼 외제차라서 사람은 살았구나.’로 바뀐 순간 보살은 아! 하고 탄성을 질렀던 것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살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물론 그 눈물은 “아!”하기 전의 눈물과는 완전히 다른 눈물이었다. 보살은 나와 이런저런 수다를 조금 더 떨다가 돌아갔지만 내내 행복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늘 불행이 피해가기를 바라고 행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는 행운이 과연 우리를 얼마나 오래 행복하게 해 주었는가? 한번 되짚어보자. 내 경험으로는 아주 짧았다. 게다가 내게 온 행운이 점점 희미해져서 신기루처럼 사라져갈 때 그 허망함이라니! 그럼에도 행운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도 내가 이미 버린 행운들을 잡으려고 기를 쓰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진짜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문설주에 기대어 행운을 기다리는 간절한 눈망울들…….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안쓰럽다. 
 삶이 어떤 포장지로 어떻게 포장이 되어 우리에게 배달되어지든지 간에 그 안의 알맹이를 잘 들여다보자. 때때로 슬프고, 절망스럽고, 아프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눈물을 뚝 그치고 아! 하는 그 순간에 남는 건, 오직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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